[정만진의 문학 향기]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 정만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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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8-18  |  수정 2023-08-18 08:08  |  발행일 2023-08-18 제17면

[정만진의 문학 향기]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정만진 소설가

1227년 8월18일 '전쟁의 신' 칭기즈 칸이 세상을 떠났다. 그는 세계 최초 제국 페르시아 전성기 다리우스 1세, 헬레니즘 문화의 기반을 닦은 알렉산드로스 대왕과도 비교할 수 없는 대국을 건설했다. 하지만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1800년 8월18일 정조대왕이 붕어했다. 아버지 사도세자의 참담한 죽음을 겪은 정조는 탕평책으로 흔히 기억된다. 하지만 220년도 더 지난 오늘날 우리나라는 정조대왕의 시대보다 훨씬 더 어지러운 정치문화에 빠져 있다.

1976년 8월18일 판문점에서 '도끼 만행'이 일어났다. 북한 장교가 휘두른 도끼에 맞아 보니파스 대위와 배럴 소위가 목숨을 잃고, 다른 8명도 중상을 입었다. 하지만 휴전선에는 오늘도 여전히 철조망이 하늘을 뒤덮고 있다.

1930년 8월18일 태어난 신동엽은 '껍데기는 가라'에서 열정적으로, 또는 애절하게 노래했다.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동학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중략)"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시인은 외치고 있다. '허위로 민주주의를 말하고, 허위로 자주를 이야기하고, 허위로 평화를 부르짖는 껍데기들은 이 땅에 사라져 달라!'

신동엽은 무엇 때문에 그렇게 부르짖고 있는 것일까? 김종삼 시 '민간인'이 정답을 말해준다. "1947년 봄/ 심야/ 황해도 해주의 바다/ 이남과 이북의 경계선 용당포/ 사공은 조심조심 노를 저어 가고 있었다/ 울음을 터뜨린 한 영아를 삼킨 곳/ 스무 몇 해 지나서도 누구나 그 수심을 모른다"

생명이 존중되지 않는 살벌한 경계선을 민간인들이 은밀히 이동하고 있다. 그런데 어리고 어린 아기가 울었다. 민간인들은 그 영아를 바다에 수장했다. 수심도 알 수 없는 캄캄한 물속으로 영아를 밀어 넣은 그들도 민간인인가?

지독한 가난과 혹독한 질병은 인간소외를 일으킨다. 악독한 정치도 사람을 비인간화의 수렁으로 몰아넣는다. 권력을 독점하려는 소수가 기본권을 누리려는 민중을 탄압하면 사회는 갈등으로 가득 채워진다. 전쟁도 그렇다.

'전쟁의 신'과 '도끼 만행'의 시대에는 민간인이 민간인으로 살아갈 수 없다. 1950년 전후의 우리나라 상황도 그러했다. 다시는 그런 날들이 오지 않기를 희구하며 시인은 오늘도 평화를 노래하고 있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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