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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근 문화평론가 |
최근 새만금 잼버리 대회가 준비부실로 혹독한 평가를 받았다. 한국의 위신이 실추될 상황에서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해 준비된 회심의 카드가 바로 케이팝 공연이었다. 가장 먼저 대회장을 이탈했던 영국이 대사대리를 통해 영국 스카우트 단원들의 케이팝 공연 참여를 먼저 요청해올 정도로 공연은 효과적이었다. 케이팝의 영향력을 확실히 보여준 사건이다.
이 공연에 한국의 국제적 팝스타들이 대거 출연했는데 그중에서 가장 화제가 된 건 뉴진스와 아이브였다. 데뷔한 지 1년에서 1년 반 정도밖에 안 된 신인들이 국가적 페스티벌에서 간판 역할을 한 것이다.
이 두 팀이 모두 4세대 걸그룹이다. 1세대가 핑클, SES 등이라면 2세대는 소녀시대, 원더걸스, 3세대는 블랙핑크, 트와이스, 그리고 4세대는 최근 등장한 신인들이다. 신인 걸그룹이 대형 페스티벌에서 이목을 집중시킬 정도로 케이팝 걸그룹의 위상이 급상승했다. 가히 '대걸그룹 시대'의 도래다.
원래 아이돌은 보이그룹 중심이었다.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에서 시작해 HOT가 아이돌 전성시대를 확립했다. HOT와 젝스키스의 격돌 앞에 SES와 핑클의 대결 구도는 마이너 이슈였다. 그후로도 동방신기, 빅뱅, 엑소, 방탄소년단 등 아이돌계의 확고한 중심은 보이그룹이었다. 그러다 최근 들어 걸그룹의 영향력이 대폭 강화됐다. 블랙핑크가 팬덤을 확장해가더니 2022년에 4세대가 활동하면서 걸그룹이 가요계를 휩쓸기 시작했다. 방탄소년단이 군대에 가면서 케이팝 아이돌계에 걸그룹 패권 체제가 확고해졌다.
원래 보이그룹이 시장의 중심이었던 건 여성팬들의 압도적 지지 덕분이었다. 남성팬보다 여성팬의 지지가 더 뜨겁고 안정적이다. 과거엔 여성팬들이 보이그룹을 지지하고 남성팬들은 걸그룹을 지지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팬까지 걸그룹을 지지하기 시작했다. 블랙핑크가 대표하는 걸크러시 열풍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과거처럼 남성들에게 귀여움을 떠는 콘셉트가 아닌 당당한 여성의 주체성을 내세우는 흐름이 커졌는데 그걸 걸크러시라고 한다. 이것이 페미니즘 열풍하고도 맞물려 여성들로부터 뜨거운 지지를 받았다. 이제 걸그룹은 '오빠'에게 매달리지 않고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 작년 최대 히트곡 중 하나가 4세대 걸그룹인 (여자)아이들의 '톰보이'였는데 당당한 여성상을 내세운 노래였다.
한국 걸그룹의 이런 변화는 해외에서도 환영받았다. 그래서 블랙핑크 같은 케이팝 걸그룹이 지구촌 젊은 여성들의 로망이자 롤모델이 된 것이다. 이런 걸크러시의 연장선상에서 또 다른 4세대 걸그룹 스타인 르세라핌도 등장했다. 하지만 너무 강한 콘셉트가 난무하다 보니 정반대인 부드러운 느낌이 대중에게 신선하게 받아들여졌다. 그래서 뉴진스가 터졌다. 작년에 아이브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면 작년 말부터 올해는 뉴진스가 돌풍의 핵이다. 분위기는 걸크러시 콘셉트와 달라졌어도 과거처럼 '오빠'를 찾는 쪽으론 가지 않았고 음악과 퍼포먼스가 더 고도화됐다. 높은 음악 수준과 실력에 감탄하며 여성팬들의 지지가 계속 이어졌다. 해외에서도 비슷한 분위기다.
세계적으로 우리 걸그룹들이 잇따라 대형 페스티벌이나 스타디움 공연을 성공시키는 추세다. 블랙핑크, 트와이스, 뉴진스, 에스파 등이 팝스타로서 동서양 초대형 무대들을 누빈다. 팝스타 중에서도 일급 스타의 행보다. 전통적인 남성팬들에 더해 여성의 지지까지 가세해 걸그룹을 우뚝 세운 셈이다. 사상 초유의 걸그룹 초전성시대다.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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