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은의 천일영화]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 윤성은 영화평론가
  • |
  • 입력 2023-08-25  |  수정 2023-08-25 07:00  |  발행일 2023-08-25 제26면
OTT에 익숙해진 관객들

만족스러운 작품이 아니면

굳이 영화관을 찾지 않아

블록버스터위주 투자방식

전면적으로 재고해보아야

[윤성은의 천일영화]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영화평론가

영화평론가가 하는 일들 중 가장 곤혹스러운 것이 '예측'이다. 기자들은 꽤 자주 미래의 일들을 질문해 온다. "이번 칸영화제에서 모 감독이 수상할까요. 한다면 무슨 상일까요?"라든가 "이번 여름 시장에서는 어떤 작품이 가장 성공할까요" "XX 영화가 500만을 돌파했는데, 1천만을 넘을 수 있을까요? 그 시기는 언제쯤으로 보시나요?"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명색이 전문가인데 "내가 그걸 알면 자리를 깔았겠죠. 방구석에서 원고나 쓰고 있을까요"라고 할 수는 없으니 다년간의 경험과 현재의 트렌드, 영화판에서 귀동냥한 정보들을 모두 긁어모아 그럴듯한 대답을 내놓기는 한다. 논리적 근거는 있기 때문에 틀려도 어쩔 수 없지만 적중률이 떨어지면 다음 예측을 하기가 더 어려워진다는 게 문제다. 올해 들어 부쩍 관객들의 성향을 종잡을 수 없어 답답할 때가 많았다.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들이 먼저 두드러진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장기흥행, 한국에서만 유독 많은 관객들을 동원한 '엘리멘탈', 전작인 '미션 임파서블: 폴아웃' 관객 수의 60% 수준에 그친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등이 그 예다. 사후 원인 분석이야 가능했지만 이런 현상들이 가시화되기 전까지 앞일을 내다볼 수는 없었다. 유난히 경쟁이 치열했던 올여름 영화 시장의 동향을 정리하면서, 지금 관객들이 개봉 영화에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재정립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아직 진행 중이기는 하지만 '밀수'(류승완)와 '콘크리트 유토피아'(엄태화), 그리고 '비공식작전'(김성훈)과 '더 문'(김용화)의 명암이 갈렸는데, '밀수'의 흥행은 어느 정도 예상했으나 '더 문'은 생각보다 훨씬 심각하게 외면 당한 반면,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그런대로 순항하고 있는 중이다. '더 문'은 서사의 빈약함과 감정의 과잉이 거슬림에도 불구하고 처음 개봉하는 한국 우주 SF 영화이니만큼 관객들도 호기심을 가질 거라 전망했고,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재미도 있고 완성도도 높지만 보고 나서 찝찝한 영화라 휴가철 관객들이 기피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오펜하이머'(크리스토퍼 놀란)는 또 어떤가. 3시간이라는 러닝타임에다 우리가 잘 모르는 미국 역사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도 개봉 이후 줄곧 박스오피스 1위를 유지하고 있다. 감독에 대한 국내 관객들의 애정과 신뢰가 핵폭탄과 만나 화끈한 화력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많은 양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고 있음에도 흥행 전망이 자꾸 빗나가는 것은 그 자료들이 코로나 시대 이후 변화된 관객 성향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공식적으로 코로나19 방역이 종결된 후 처음 맞았던 이번 여름을 통해 배워야 할 점이 많다. 관객들은 이제 OTT에서 영화 한 편 값으로 수많은 양질의 콘텐츠를 소비하고 있기 때문에 기술적 완성도는 물론 신선한 소재, 스토리텔링, 오락성, 캐스팅 등 모든 면에서 만족스러운 작품이 아니면 굳이 영화관으로 향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성수기에조차 관객 수가 급격히 감소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업계에 안정적인 수익을 가져다주어야 할 텐트폴 영화들이 겨우 손익분기점을 목표로 하는 상황에서 블록버스터들은 이제 제작비만큼의 부담으로 남게 되었다. 1년에 2억명의 관객을 동원하던 시대에는 들어맞았지만,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된 업계의 안일한 기획과 블록버스터 위주의 투자 방식에 대해 전면적으로 재고해 보아야 할 때다.영화평론가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