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세계질서 재편으로 한중관계 재정립해야

  • 이효수 전 영남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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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8-28  |  수정 2023-08-28 06:49  |  발행일 2023-08-28 제26면
국제질서·경제논리는 냉엄

美전략 지혜로 대처 못하면

반도체·배터리 경쟁력잃어

전략적 정경분리 원칙으로

한중 경제관계 강화 전략을

[아침을 열며] 세계질서 재편으로 한중관계 재정립해야
이효수 전 영남대 총장

미중 패권 전쟁으로 세계질서가 빠른 속도로 재편되고 있다. 세기적 격랑의 파고, 그 중심에 한국이 있다. 최근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 회의는 미국의 대표적인 지역별 소다자 협의체인 쿼드(QUAD: 미국, 일본, 호주, 인도의 안보협의체), 오커스(AUKUS: 미국, 영국, 호주 안보협의체)보다 더 강력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미일은 안보, 경제, 첨단기술, 지역·글로벌 협력, 보건, 인적교류 등 광범위한 분야를 구체적으로 다루면서, 이것을 정상, 장관급, 차관보급 등 다층적 협의 메커니즘으로 실현해 갈 것이라고 한다.

안보 경제 기술을 중심으로 한 이런 강력한 한미일 협력 플랫폼은 과거 어느 때보다 한미일 모두에게 절실한 시점이다. 미국은 미중 패권 전쟁에서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한국은 북한 핵위협으로부터 국가 안보를 지키기 위하여, 일본은 안보·경제에서 지위 회복을 위하여 한미일의 긴밀한 협력이 필요해졌다.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NYT)는 머리기사로 캠프 데이비드 정상 회의 소식을 전하면서, "미국의 외교적 꿈이 실현되었다"라고 했다. 이것은 미국이 오래전부터 한미일의 강력한 협력 체제를 원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최근에 반도체 기술이 경제를 넘어 국가 안보의 핵심 가치로 인식되면서 미국, 일본 모두, 반도체 강국 한국과의 긴밀한 협력관계가 더욱 필요해졌다.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한미일의 이런 협력관계 구축은 꿈도 꾸기 힘들었다.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 침탈로 인한 씻기 어려운 역사적 상처를 안고 있고, 일본은 진솔한 사죄와 반성을 거부해 왔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가 안보와 나라의 미래를 위하여 국민 저항을 무릅쓰고, 이 악연을 뛰어넘는 결단을 내리면서 한미일의 새로운 역사의 장을 열었다.

문제는 한중관계이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한중 경제교류는 폭발적으로 발전해 왔다. 근래에 중국의 사드 보복이 있었지만, 한미관계가 불안정해질 때도 안미경중(安美經中), 정경분리, 전략적 모호성 등을 내세워 우리는 한중 경제관계를 지속적으로 확대 심화시켜 왔다. 그런데 미국이 미중 패권 전쟁에서 글로벌 공급망 재구축을 추진하고, 한미일 협력관계를 강화하면서, 안미경중, 정경분리,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게 되었다.

그렇지만 한중 경제관계는 여전히 매우 중요하다. 미국의 글로벌 공급망 재구축 전략으로 정경분리 원칙을 고수하기 쉽지 않지만, 우리는 고도의 '전략적 정경분리 원칙'으로 한중 경제관계를 오히려 강화하는 전략을 펴야 한다. 미국은 반도체 지원법(Chips-Act),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으로 반도체와 배터리 리쇼어링 정책을 펴고 있다. 한국의 최대 경쟁력인 반도체와 배터리에서 미국이 다시 주도권을 회복하겠다는 것이다. 국제질서와 경제논리는 냉엄하다. 미국의 전략에 지혜롭고 냉정하게 대처하지 못하면, 우리는 반도체와 배터리 경쟁력을 잃을 수 있고, 그것은 국가경쟁력의 상실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우리는 글로벌 공급망 재구축에서 중국의 배제는 안보에 직결되는 최소 품목으로 하고, 그 외 품목에서는 경제교류의 자율성을 최대화하는 '최소 최대의 원칙'으로 '전략적 정경분리 원칙'을 철저하게 관철해야 한다. 국제 경제협력은 정치논리가 아닌 경제 원리에 따른 경쟁과 협력에 기초해야 한다. 특히 이번에 다시 출범하는 한국경제인연합회는 싱크탱크 기능을 강화하여 대내적으로 정경분리를 분명히 하고, 대외적으로 '전략적 정경분리'의 주체가 되어 한중 경제관계를 확대 심화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이효수 전 영남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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