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예술가의 공간

  • 박정현 (설치미술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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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8-29  |  수정 2023-08-29 08:53  |  발행일 2023-08-29 제17면

[문화산책] 예술가의 공간
박정현 (설치미술작가)

예술가의 공간은 일반적 공간과 그 의미가 다를 수 있다. '공간의 천장높이가 창의력의 높이'라는 말도 있지만 이러한 공간은 작가들의 물리적 공간(작업실)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작가의 공간이란 뭔가에 몰입할 수 있는 곳, 유형의 무언가를 만드는 공간을 의미하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작가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작업에 나선다. 이런 이유로 많은 작가들이 작업실의 넓이 등 작업환경과 무관하게 자신만의 창의력을 키우고 다듬는다. 작업실의 환경 수준과 작품성이 비례하지도 않는다. 나의 작업실도 좁지만 오롯이 '작가 박정현'으로 활동하기에 충분하다.

아파트가 아닌 주택에서만 살아온 경험 역시 공간에 대한 감각을 일깨우는 데 도움이 됐다. 주택을 사랑하는 아버지 덕분에 나는 어릴 적부터 마당이 있는 주택 1층에서만 살아왔다. 여름 장마철, 잎이 떨어지는 가을, 눈이 오는 겨울,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시절에도 계절이 바뀔 때마다 늘 해야 할 일이 많았다. 겨우 초등학교 1·2학년이었지만 나는 계절이 너무 빨리 바뀐다고 느꼈고 그것이 싫었던 기억도 있다.

지금도 나는 주택에서 산다. 대문 입구 라일락 나무의 향기를 통해 계절의 변화를 느낀다. 주택에서의 삶을 통해 공간이 주는 자유를 한껏 느낄 수 있는 행운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예술을 사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준 '아버지의 고집'에 늘 감사하다.

훌륭한 작가라면 공간의 환경과 상관없이 창작에 나서야 하겠지만 나는 답답한 실내 공간보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빗물의 흐름, 사람들의 움직임과 표정이 보이는 곳을 좋아한다. 대상에 대한 관찰을 즐기게 된 것도 어린 시절 환경 덕분일지 모른다.

나의 작업실은 아이디어를 실험하고, 형상화하는 공간이다. 어떤 간섭도 없이 주변을 관찰하고 나의 내면을 관찰하면서 아이디어를 스케치할 수 있다. 온전한 자유와 그 자유에서 오는 집중력을 맘껏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 공간에서 나는 나조차도 낯선 나의 모습을 관찰하기도 한다.

현대인이라면 타인에게 방해받지 않고 휴식을 취하고 여유를 가질 수 있는 나만의 휴식 공간인 '슈필라움(Spielraum)'이 필요하다. 이 공간은 단순한 물리적인 공간이 아닌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심리적인 자유 공간, 혼자 있어도 지겹지 않은 공간, 새로운 꿈을 꾸고 상상할 수 있는 공간이다. 창작품을 만드는 공간은 아닐지라도 이러한 공간이 필요한 시대에 사는 현대인의 삶이 마치 예술가의 삶과 흡사한 듯하다.

박정현<설치미술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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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현 (설치미술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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