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만진의 문학 향기] 매일 죽는 국민

  • 정만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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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9-01 08:06  |  수정 2023-09-01 08:06  |  발행일 2023-09-01 제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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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만진 소설가

1920년 9월1일 미국 배우 리처드 판스워스가 태어났다. 그는 18세인 1938년 '마르코 폴로의 모험' 출연으로 영화계에 데뷔했다. 하지만 그 후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정식 역할을 맡는 출연자가 아니라 스턴트 배우였던 탓이다. 리처드 판스워스에게 처음으로 주연이 돌아온 것은 63세이던 1983년이었다. 캐나다 서부극 '그레이 폭스'에서 열연하였고, 그때부터 노령의 전성기가 펼쳐졌다. 그는 물 만난 고기마냥 혼신의 열정을 바쳐 자신에게 주어진 배역을 훌륭히 소화했다.

그러나 늦게 꽃피운 리처드 판스워스의 인생은 그가 자연사할 때까지 행복하게 이어지지 못했다. 생을 마감한 2000년 당시 80세였으니 지나치게 이른 나이는 아니었지만, 그는 스스로 목숨을 버렸다. 암 투병의 고통과 전망 없는 나날에 대한 비관이 그렇게 삶을 마감하도록 만들고 말았다.

1970년 우리나라 작가 조해일이 단편 '매일 죽는 남자'로 문단에 얼굴을 내밀었다. '매일 죽는 남자'는 "일요일인데도 그는 죽으러 나가려고 구두끈을 매고 있었다"로 시작되는 재미있는 단편이었다. 사람이 어떻게 매일 죽을 수 있느냐고? 소설의 주인공은 영화에서 죽는 배우를 대신하는 엑스트라 담당이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자살률, 즉 인구 10만명당 자살하는 사람 수가 2000년 13.7명, 2005년 24.8명, 2011년 31.7명, 2019년 26.9명이었다. 2017년을 기준으로 할 때 우리나라 자살률은 OECD 국가들의 평균보다 2배를 뛰어넘는다. 거의 매년 OECD 최상위 자살률을 보여주는 국가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2019년 자살률을 보면, 남자 70세 이상 90.5명(여자는 28.0명), 60∼69세 54.2명(14.0명), 50∼59세 50.5명(15.9명), 40∼49세 44.5명(17.1명), 30∼39세 33.5명(20.0명), 20∼29세 21.6명(16.6명), 19세 이하 3.0명(3.5명)을 기록하고 있다. 2017년 기준으로 OECD 주요 국가들과 견주어 보면, 한국 23.0명은 일본 14.9명, 미국 14.5명, 프랑스 12.3명, 캐나다 11.0명, 독일 9.5명, 영국 7.3명, 스페인 7.0명, 이탈리아와 멕시코 5.5명, 그리스 4.0명과 크게 대비가 된다.

자살자가 가장 많은 나라가 대한민국이지만 정치권은 별로 관심이 없다. 자살을 실행하지는 않아도 죽고 싶다는 생각에 빠진 국민까지 합하면 그 수는 엄청날 텐데, 정치권은 거의 오불관언인 듯하다. 그들은 무엇에 집중하고 있을까? 통일? 민주화? 세계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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