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뮤지컬 박서생' 리뷰-생의 먼 길에서 자신을 찾아 나선 이에게

  • 김남석 부경대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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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9-05  |  수정 2023-09-05 08:01  |  발행일 2023-09-05 제21면

[기고] 뮤지컬 박서생 리뷰-생의 먼 길에서 자신을 찾아 나선 이에게
김남석 (부경대 교수·연극평론가)

지역의 고유한 문화 자산을 통해 문화콘텐츠를 생성하는 작업이 관심을 얻고 있다. 특히 이러한 작업은 그 지역을 대표하는 인물에 관한 관심으로 확장되는 추세다. 경북 의성이라는 지역은 그러한 발굴과 확장 사업의 일환으로 율정 박서생을 선택했다. 그리고 이 선택은 율정의 일생과 업적, 그리고 관련 일화를 담은 뮤지컬을 제작하기에 이르렀다.

인물 관련 역사콘텐츠를 활용해 연극 관련 문화콘텐츠로 재생산하는 제작사업은 한편으로 해당 지역민의 자긍심 고취와 함께 한층 더 다양하고 풍부한 연극 콘텐츠의 개발을 부추긴다. 한 걸음 더 나아간다면 지역과 시대를 아우르는 문화콘텐츠 생산에 이바지할 것으로 기대된다. 지역마다 각자의 방식으로 '자기 고장의 인물'을 선별하고, 발굴하고, 홍보하고, 내세우는 작업의 가치가 새삼 주목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뮤지컬 박서생' 무대에서 가장 강렬하게 눈에 들어오는 효과는 매핑을 활용한 '빛의 양각(陽刻)'이다. 실제 무대로서의 야외 공연장은 성벽과 성문, 그리고 문루로 이루어진 한국의 읍성을 빼닮았다. 그 뒤로 구봉산 산세가 드리워지면서 아늑한 인상을 준다. 이런 야외무대에서 매핑을 활용한 빛의 조각은 성벽 위에 그림을, 글자를, 상징을 그려내는 작업으로 적절했다.

한낮의 햇빛이 사그라들고 그 위에 어둠이 살짝 드리우는 시점에 인공적으로 구현된 빛은 야외무대를 때로는 전쟁터로, 때로는 항해지로, 때로는 삶과 죽음이 분투하는 상징적 공간으로, 어떤 때는 궁궐로, 또 다른 때는 농민의 터전으로 바꾸어 놓는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공간의 이동이 많았다. 따라서 그 많은 공간의 거리감과 격리감을 뒷받침하기에는 이러한 빛의 매핑이 유용하고 또 효과적이었다.

매핑이 유독 강렬하게 새겨지는 장면은 파도와 불덩이가 뒤섞여 꿈틀거리는 장면이었다. 영화의 프레임처럼 나뉜 성벽에는 솟아오르고, 전진하는 파도가 그려지면서 파란 바닷물과 흰색의 포말이 요동쳤다. 율정이 '현해탄'이라는 쉽지 않은 바다를 넘어야 하는 위험인 동시에 미지의 세상을 향한 강력한 유혹과 동경, 그리고 불안이 뒤섞인 감정을 연출한 대목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일반적인 연극이 배우의 말과 연기, 그리고 움직임과 이미지로 작품의 진의를 표현하는 데 주력한다면 '뮤지컬 박서생'은 빛의 조각을 활용한 추상적 영상으로 그 역할을 분배했다고 할 수 있다. 매핑으로 투사된 무대는 실경으로서의 성벽과 마을, 궁궐과 마당으로도 의미가 있지만, 추상적 공간으로서의 상징성과 비유적 의미를 함께 확보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만한 광경이었다.

실존 인물인 의성 출신 박서생에 관한 기록은 임진왜란으로 인해 생몰연대는 물론, 그의 최대 업적 가운데 하나인 일본에서의 여정 역시 정확하게 남아 있지 않다. 다만 그가 당시 여정을 통해 얻은 새로운 경험과 이를 바탕으로 확보한 심안(心眼)이 어느 정도 확인될 뿐이다. 그래서 '뮤지컬 박서생'은 율정의 철학적 사상을 재조명하는 데 집중한 듯하다.

길 떠나는 이에게는 여행의 끝에서 보아야 하는 것이 있다. 박서생은 수차를 보고, 물레방아와는 다른 삶의 방식을 찾았을 것이다. 외국의 문물과 풍습(가령 목욕탕)을 보면서도 조선에서의 삶과 다른 지점을 저절로 발견했을 것이다.

그다음 아마도 그는 자신의 삶과 내면을 찾지 않았을까. 스승과 달리 고향을 떠나 정계로 나아가야 했던 선택의 이유를 찾아, 인생이라는 자신의 길이 품고 있었던 이유를 찾아야 하지 않았을까. 율정이 찾았던 자기 삶의 길과 그 끝을 발견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과 길에서도 분명 의미 있는 끝을 미리 엿볼 수 있을 것이다.
김남석 (부경대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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