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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봉규 (전 대구시 정무부시장) |
조선 후기 당쟁의 역사는 사상과 이념투쟁의 역사이다. 정치인들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이념과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상대 당에 대한 공격과 방어를 이어갔다. 중국 고전과 역사적 선례를 논거로 나와 생각이 다른 자는 이단이나 사문난적으로 몰았다. 백성들의 삶은 뒷전이었다. 이러한 경향은 시간이 흐를수록 상승작용을 일으켜 마침내는 상대에 대한 죽고 죽이는 게임으로까지 발전해갔다. 당시 민생문제의 핵심은 세금과 부역제도의 개혁이었다. 일부 선각자들의 노력이 없지 않았지만 폐단의 근본을 고치는 데에는 이르지 못하였다. 사대부 세력 안에서의 정권교체는 있었지만 조선사회가 당면하고 있던 민생현안은 전혀 해결하지 못한 채 시간만 보내다가 결국 나라가 망하고 말았다.
정치적 공방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책에 대한 비판을 넘어 상대를 적대시하고 이념으로 자기편을 결집하기에 바쁘다. 문제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적극적으로 실행에 나서기보다는 상대의 헛발질을 기다리며 반사이익을 노린다. 말로는 첫째도 민생, 둘째도 민생이라고 외치지만 관심은 오직 나의 공천과 우리 당의 총선 승리에 모인다. 선거가 정책대결의 장이 아니라 모든 것을 거는 게임이 되고 말았다. 당쟁의 역사 중에서도 최악이었던 환국을 연상하게 한다.
주위를 둘러보면 당장 해결해야 할 경제현안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코로나 이후 무너진 자영업자와 저소득층을 되살리는 일, 증가일로에 있는 가계부채와 실질소득의 감소를 억제하는 일, 청년실업을 줄이고 이들을 보듬는 일, 수출이 다시 성장의 지렛대가 되도록 만드는 일, 미중 간의 패권경쟁 속에서 우리 경제의 활로를 모색하는 일이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국가의 존망이 걸린 저출산 문제의 해결과 곧 1%대로 떨어진다고 하는 성장잠재력의 복원 그리고 교육 및 연금개혁을 포함하여 미래세대를 위한 개혁을 추진하는 일 또한 정치적 해법을 기다리고 있다.
경제문제가 중요한 것은 경제가 삶을 꾸려가는 기본이기 때문이다. 최근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묻지마 살인이나 가정 붕괴와 같은 안타까운 현상의 뒤에도 많은 경우 경제문제가 숨어있다. 나아가 당장 미래 세대를 위한 성장 동력 마련과 제도정비에 나서지 않는다면 다음 세대의 삶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 미래 준비를 소홀히 하여 그들이 지금 우리보다 더 어렵게 살아가게 된다면 이는 현 세대가 미래세대의 몫을 당겨쓰는 것이요 그들에게 죄를 짓는 것이다.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이런 상태를 언제까지 방치해 둘 수 없다. 우리에게는 주어진 시간 또한 많지 않다. 정치권은 실질적인 성과로 스스로 존재의 정당성을 입증해야 한다. 그 실효적 성과의 첫자리가 바로 민생의 개선이다.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의지와 구체적인 실천 그리고 만족할 만한 결과를 내놓지 못한다면 민생을 챙긴다는 각 당의 구호는 자신들의 이해를 감추기 위한 허망한 포장일 따름이다.
걸프전의 승리로 한때 조지 부시 대통령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그러나 군사와 외교 면에서 강한 미국이 자동적으로 국민들의 삶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었다. 경제가 어려워지자 드디어 '문제는 경제야 이 바보야(It's economy, stupid)'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출마한 애송이 클린턴에게 정권을 내주고 말았다. 미국에서도 국민들의 관심사는 다른 무엇보다도 민생 즉 먹고사는 문제였던 것이다.
박봉규 (전 대구시 정무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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