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골목길과 엘리베이터

  • 김소희 영남대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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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9-06  |  수정 2023-09-06 07:51  |  발행일 2023-09-06 제19면

[문화산책] 골목길과 엘리베이터
김소희〈영남대 건축학부 교수〉

어제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화가 났다. 내려서 집에 들어오니 더 화가 났다. 주인 손에서 풀려난 강아지를 갑자기 엘리베이터에서 마주하게 된 것이다. 무서움을 표현했는데 그것이 주인에게는 상처가 되었나 보다. 나는 정말 놀랐다! 억울하다.

아파트 거주가 대부분인 도시의 삶, 고층 아파트 문화에서 엘리베이터는 만나고 헤어지고 눈인사하고, 시선이 부딪히며 무언의 대화가 오가는 공간이다. 서로 마주할 일 없는 아파트에서의 유일한 소통창구인 엘리베이터는 매일 만나는 골목길 같다. 골목길은 사람이 움직이지만, 엘리베이터는 공간이 움직인다. 골목길의 초입은 항상 북적이고 시끄러운데 가까워서 좋다. 아파트의 저층부는 엘리베이터에서 빨리 내려 내 공간으로 갈 수 있어서 좋다. 그런데 가끔, 좋은 사람을 만나면 더 타고 있고 싶을 때도 있다.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닫힌다. 사람이 왔다가 간다. 골목길에서 하늘을 보며 자유롭게 걷고, 엘리베이터의 기하학적 공간 안에서 시선을 숨기며 잠시 머문다. 이것은 이성적인 시선을 접하는 도시 공간적 시선이다. 퇴근길에 만나는 엘리베이터는 오늘의 감정을 정리하는 첫 단추이다. 사람과 사람은 격리되는 것이 아니라 엘리베이터에서 위로받기를 원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도시공간에서 내가 느끼는 감정이다.

2018년 '서울시 골목길 재생 기본계획' 보고서에는 "골목길은 자생적으로 생겨나는 자연을 닮은 서민 주거지로, 사회적 생태계의 서식지"라 쓰고 있다. 연속적 기억을 남기는 골목길에 반하여 찰나의 기억을 주는 엘리베이터는 연속적이지 않기에 개인의 정서가 공간에 영향을 미친다. 군중 속의 고독을 즐기는, 현대인이 원하는 느슨한 연대와 어울리는 공간이다. 이러한 수직 골목 안에서는 선택할 수도 없고 숨을 곳도 없다. 과거 골목길은 삶의 일부로서 기억을 형성해 왔고 지금은 엘리베이터가 우리 삶의 일부가 되었다. 골목길 산책이 한가롭고 여유로운 낭만이라면, 고층 건물의 엘리베이터 타기는 빨리 도착하기 위한 찰나의 공간으로만 여겨지는 게 아닐까?

막힌 골목길 같은 엘리베이터에 대한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 도시에서 엘리베이터는 감성을 담아낼 수 있는 의미 있는 공간으로서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 만나는 사람은 우리 동네 사람들이다. 출근길의 첫 만남도, 퇴근길의 마지막 만남도. 코로나 팬데믹으로 더욱 모이고 싶어 하는 현대인에게 과거 골목길의 역할이 엘리베이터에 적용되어 현대적 의미의 골목길로 변모하기를 바란다. 출근길, 엘리베이터에서 나의 도시적 감상을 시작한다. 김소희〈영남대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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