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만진의 문학 향기] 육신사 배롱나무

  • 정만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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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9-08  |  수정 2023-09-08 08:28  |  발행일 2023-09-08 제17면

[정만진의 문학 향기] 육신사 배롱나무
정만진 (소설가)

매년 6월1일은 '의병의 날'이다. 1592년 5월23일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6월1일 홍의장군 곽재우가 의령에서 창의했다. 그 일을 기려 6월1일을 의병의 날로 기념하는 것이다.

6월1일을 음력 4월22일로 표기한 글들도 있다. 그날 홍의장군의 머릿속 날짜는 분명 4월22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양력으로 밝혀주어야 현대인의 계절 감각에 맞다.

우리나라가 태양력을 채택한 때는 음력 1895년 11월17일이다. 고종은 그날을 양력 1896년 1월1일로 바꾸었다. 그렇게 볼 때 조선 세조의 붕어일은 9월8일일까, 10월2일일까?

세조는 음력 1468년 9월8일 하세했다. 양력으로는 10월2일이다. 당시 사람들은 그날을 '음력 9월8일'이 아니라 그냥 '9월8일'로 인식했다. 태양력을 쓰지 않던 시대였으므로 그날이 양력으로 10월2일이라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었다.

세조라면 사육신이 떠오른다. 세조는 자신에게 맞선 사람들을 무수히 처형했는데, 남자 직계 후손들까지 몰살했다. 다만 단 한 사람, 박팽년의 손자만이 유복자였던 덕분에 살아남았다.

박팽년의 시조를 읊어본다. "까마귀 눈비 맞아 희는 듯 검노매라/ 야광명월이 밤인들 어두우랴/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변할 줄이 있으랴"

까마귀가 눈 섞인 비를 맞아 언뜻 희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시커먼 실체를 숨길 수는 없다. 빛나는 달이 밤이라 하여 흐릿해지는 법은 없다. 임금을 향하는 나의 충심도 변할 리 없다.

박팽년의 절의가 단단하게 드러나 있는 훌륭한 시조 작품이다. 이런 시조는 방이나 사무실이 아니라 육신사 현장에 가서 읽을 일이다. 육신사는 사육신을 섬기는 공간이다.

육신사는 박팽년의 손자 박일산이 살았던 달성군 하빈면에 있다. 육신사 경내에서 대표 건물로는 박일산이 직접 지은 태고정, 그리고 사당 숭정사와 사육신기념관을 손꼽을 만하다.

태고정은 국가가 지정한 보물이기도 하다. 숭정사는 삼문이 굳게 닫혀 있어 출입이 불가능하지만 태고정은 사방으로 개방되어 있어 답사자의 마음에 역사의 물결을 일으킨다.

게다가 배롱꽃 철이면 육신사는 절경이다. 그 붉은 향기에 취해 이곳이 사육신 유적이라는 사실마저 잊을 지경이다. '그래서는 안 돼!' 하는 마음가짐으로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변할 줄이 있으랴"를 다시 한번 반복해 본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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