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빈대

  • 이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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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10-10 06:43  |  수정 2023-10-10 06:56  |  발행일 2023-10-10 제23면

조선시대 땐 절에 빈대가 들끓어 스님이 불을 지르고 자취를 감춘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달성 대견사지와 청도 장연사지에도 그런 구전(口傳)이 있다. 이하석 시인은 과거 영남일보에 기고한 글에서 '지방 관청 아전의 닦달과 뇌물 등쌀이 심했는데, 이를 견디다 못해 절에 불을 지르고는 빈대 때문에 절이 망했다는 말을 했다고 전해진다'고 했다. 빈대는 '인간 빈대 아전'을 빗댄 말이라는 것이다. 한 암행어사는 '빈대의 악몽'을 글로 남기기도 했다. 조선 후기 함경도에서 감찰 활동을 벌인 구강(具康)이다. 그는 일기에서 '수십 수백 마리가 넘는 빈대 같은 것이 이불 속에 여기저기 숨어 있어 비린내가 코를 찔러댔다. 태어난 이래로 고생이 이날 밤과 같은 경우는 없었다'고 술회했다.

이처럼 빈대는 오래전부터 인류 곁에서 서식해 온 해충이다. 예로부터 빈대에 빗댄 속담도 많다. 대표적인 게 '빈대도 낯짝이 있다'(염치없는 사람을 나무랄 때),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쓸데없는 잘못 때문에 위험을 자초하다), '빈대 붙다'(남에게 빌붙어서 득을 보다) 등이다.

수십 년 전 거의 사라진 빈대가 최근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다시 스멀스멀 나타나고 있다. 내년 올림픽을 앞둔 프랑스 파리에서도 빈대 출몰 신고가 잇따르고 있다. 근데 현지 한 방송에서 "프랑스에 이민자가 많아 빈대가 기승을 부리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나와 논란이 됐다. 누가 들어도 차별·혐오적 워딩이다. 요즘 빈대는 웬만한 살충제엔 까딱도 안 해 박멸이 여의치 않다고 한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닌 듯하다. 이창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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