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 대구 북구 읍내동의 한 문구점에서 초등학생들이 당근칼을 구경하고 있다. |
초등학생 6학년 아들을 둔 박모(38·수성구 매호동)씨는 최근 아들의 돌발 행동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이 예고도 없이 칼 형태의 물건을 들고 자신을 찔러왔기 때문이다. 깜짝 놀란 박씨가 아들을 제지했고, 한바탕 울음바다가 펼쳐졌다. 아들의 손에 들려진 것은 다행히 칼이 아닌 칼 형태의 장난감이었지만, 그의 안색은 한참 동안 딱딱하게 굳은 채 펴지지 않았다.
박씨는 "아들이 비록 장난감이지만 칼 형태의 물건을 들고 남에게 찌르는 행위를 할 것이라곤 상상하지 못했다"며 "요즘 칼로 인한 사건·사고도 잦은데 어린이들이 칼 형태의 장난감을 들고 다니는 것 자체가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최근 초·중학생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는 장난감 '당근칼' 때문에 교육 현장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당근칼'은 잭나이프 형태의 키덜트(어린이의 감성을 지닌 어른을 일컫는 말) 장난감으로, 칼 부분 모양이 흡사 당근을 떠올리게 해 붙여진 이름이다. 당근칼의 인기로 교내에서 찌르기 놀이 등 위협적인 놀이문화가 성행하면서 자칫 생명 경시 사상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학교 현장에서 당근칼이 유행한 건 불과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틱톡과 유튜브 등 SNS를 통해 소개된 당근칼은 현재 그야말로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현재 초등학생들 사이에선 '당근칼이 없으면 왕따를 당한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인기 이유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지만, '그립감이 좋다'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손을 사용해 텐션을 주면 '딸깍' 소리가 나면서 칼이 나왔다가 들어가는데, 이 행위가 스트레스 완화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접근성이 뛰어난 점도 인기의 또 다른 요인이다. 크기 7㎝×4.5㎝가량의 당근칼 기본 모델의 경우 가격은 1천원 수준이다. 14세 이상 구매 가능한 제품이지만, 현장에선 연령 제한은 무의미한 수준이다. 무인문방구, 무인아이스크림 가게 등에서도 구매 가능하기 때문이다. 당근칼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당근총, 바나나칼 등 아류 상품들도 출시됐다.
김모(9·칠곡초등학교)군은 "당근칼을 접었다 펼 때 촉감이 좋다. 반복하다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며 "학교에서 당근칼 없는 학생은 찾기 힘들다. 반 인원이 20명인데, 그중 내가 가장 늦게 당근칼을 구매했을 정도"라고 말했다.
문제는 당근칼이 유행하면서 교내 위협적인 놀이문화가 형성되고 있다는 점이다. 칼 형태의 장난감이다 보니 자연스레 학생 간 찌르기 놀이, 목 겨누기, 인질 놀이 등이 성행하고 있다. 학부모들은 우려스럽다. 사회적으로 흉기 난동 등 칼로 인한 사건·사고가 많은 시점에서 칼부림 모방 놀이문화가 성행하면 실제 칼 혹은 칼부림에 무뎌질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초등학생 둘을 자녀로 둔 김모(42)씨는 "지금은 비록 장난감이지만, 칼 형태의 장난감이 손에 익어 나중엔 진짜 칼로 아무렇지 않게 놀거나, 사람을 찌르는 행위에 무감각해질까 봐 걱정이다"고 털어놨다.
상황이 이렇자 당근칼의 교내 반입을 금지하는 학교도 생겼다. 최근 경기 시흥의 한 중학교는 장난감칼(당근칼) 사용 지도 안내 알림문을 학부모들에게 발송했다. 당근칼이 단순 놀이문화를 넘어 생명 경시 사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대구시교육청 관계자는 "현재까지 당근칼로 인한 불편 사례 및 민원은 접수되지 않았다"면서도 "문제가 된다고 판단되면 학생생활부장 연수 등을 통해 예방매뉴얼 마련 등 지도 방법을 고민해볼 것"이라고 했다.
글·사진=이승엽기자 sylee@yeongnam.com
이승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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