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일보-대구경북학회 공동기획 경북의 마을 '지붕 없는 박물관'] <7>경주 금척마을 '역사문화유산형' 박물관

  • 정지윤,조현희,조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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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11-08 07:47  |  수정 2023-12-08 15:24  |  발행일 2023-11-08 제12면
"박혁거세가 보물 숨긴 곳" 이야기 따라 마을구경 눈·귀 즐거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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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리 경로회관 뒤에는 영천 이씨 문중회에서 관리하는 '만취정'이 자리하고 있다.<인터넷뉴스부>
경주 건천읍 금척리에 위치한 '금척마을'은 '지리적'으로 매력적인 동네다. 경주의 핫플레이스인 '황리단길'과도 차로 약 15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아 시내와 가깝다. 마을 동쪽으로는 국도 4호선이, 서쪽으로는 경부고속도로가 있다. 고속도로 건천 톨게이트까지 마을에서 10분밖에 걸리지 않아 고속도로를 이용하기에도 편리하다. 또 신경주역과도 가깝다. 이러한 장점으로 금척마을에는 외지인들 유입이 이뤄지고 있다. 이혁택(74) 금척리 이장은 "마을이 시내와 가까우면서도 한적하다. 또 교통망도 좋아서 다른 시골에 비해 인구가 많다"면서 "최근 외부 사람들도 많이 유입돼 305여 가구가 생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마을 들어서면 고분군 눈길
보물 '금척' 묻혀있단 전설
도굴하면 벌 받는다 전해져

다양한 이야기·문화자산 보유
마을 구경하는 재미 '쏠쏠'
신경주역 인접 교통도 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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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건천읍 금척마을의 당산목. 실제 400년 수령 보호수다.<인터넷뉴스부>
◆큰 농촌마을

지난달 25일 취재차 찾은 금척마을은 가을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높은 가을 하늘과 길가에 피어있는 코스모스도 마을과 잘 어울렸다. 마을 골목곳곳에는 다양한 전원주택이 위치해 있어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큰 농촌 마을인 만큼 마을 구석구석을 둘러보기에 2시간도 부족했다.

금척마을의 경우 세 성씨의 집성촌이다. '영천 이씨' '곡산 한씨' '순흥 안씨'가 마을에 많이 거주하고 있다. 마을 위쪽에 있는 윗마을(상리), 아래쪽에 위치한 아랫마을(하리), 아랫마을 북쪽에 새로 생긴 마을 새각단(신리) 등이 금척리를 이룬다.

마을이 크다 보니 금척리 경로회관도 '상리 경로회관' '하리 경로회관' 2개로 이뤄져 있다. 상리 경로회관에는 주로 곡산 한씨들이, 하리 경로회관에는 영천 이씨들이 모인다.

그중 하리 경로회관 뒤에는 영천 이씨 문중회에서 관리하는 '만취정'이 자리하고 있다. 만취정은 1654년 조선 중기 문신 만취 이시강(李是강)이 학문을 연구하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 정자다. 영천 이씨 문중회 회의나 마을의 큰 행사는 주로 이곳에서 열리고 있다. 또 '화수회(花樹會)'가 열리는 날에는 수백 명의 사람이 이곳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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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건천읍 금척리 고분군의 '장구조산' 고분. 일제강점기때 일본인들이 금척을 탐내고 이 무덤을 도굴하려 하자 하늘에서 천둥벼락이 쳐 도망갔다는 전설이 있다.<인터넷뉴스부>
◆금척리 고분군

경주 시내에서 마을로 들어서다 보면 금척리 고분군이 눈에 띈다. 고분군 사이에 위치한 고목들도 잘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 같다. 대릉원과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금척리 고분군은 30여 개의 크고 작은 고분들로 이루어져 있다.

금척리 고분군은 삼국시대 신라의 무덤이다. 1952년 국도 4호선 공사 당시 출토된 유물과 고분의 구조로 보아 비교적 낮은 신분을 가진 5·6세기 모량부 귀족들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전설에 의하면 경주의 진기한 세가지 보물이라 해석되는 삼보 중 하나인 '금척'(金尺)이 묻혀있다고 한다.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가 하늘에서 받은 금자를 숨기기 위해 40여 개의 가짜 무덤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금척리 고분군의 경우 일제강점기까지 50여 개의 고분군이 존재했다. 그러나 고분군 곳곳에 농가가 들어서며 심하게 훼손됐다. 이후 1963년 대한민국 사적 제43호로 지정되면서 현재 복원 작업과 유물 토굴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다양한 고분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고분은 '장구조산'이다. 가운데가 잘록하게 패어 있는 모습이 장구와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장구조산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고분군 속 금척을 탐내 도굴하려다 하늘에서 천둥벼락이 치자 도망가면서 패어있는 모습 그대로 남게 됐다고 전해진다. 주민 이근택(78)씨는 "우스갯소리로 예로부터 신라 유물을 함부로 도굴하면 벌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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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혁택 금척리 이장(왼쪽), 이근만 금척리 경로회장(가운데), 이근택 주민이 단체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인터넷뉴스부>
◆'당산목' '금척정미소' 등 마을 문화 자산들

금척마을에는 마을의 수호신으로 모셔 제사를 지내 주는 나무인 '당산목'이 있다. 1982년 경주시 보호수로 지정됐다. 당산목 앞에 위치한 비석에는 '300년' 수령으로 표기돼 있지만, 실제 수령은 400여 년이라고 한다.

주민들은 당산목에서 매년 마을의 안녕과 평안을 기원하기 위해 동제를 지낸다. 주민 이씨는 "요즘 동제를 지내는 마을이 많지 않다"면서 "우리 마을에서는 계속해서 동제를 정월 초엿샛날마다 지내고 있다. 올해도 온 마을 주민들이 모여 지냈다"고 했다.

금척마을 윗마을에는 '금척정미소'도 위치해 있었다. 70년 가까이 운영됐으나, 지난해 철거돼 지금은 터만 남아있다. 과거부터 마을 주민들이 쌀농사를 많이 지은 만큼 정미소의 규모와 수익은 컸다. 그러나 각 가정에 정미기가 보급되면서 정미소 운영에 어려움이 생겨 문을 닫게 됐다.

금척정미소를 운영했던 이근만(83) 경로회장은 "마을 주민들의 주 생업이 농업이다 보니 쌀을 지어 돈을 많이 벌었다"면서 "지금은 농업이 사양산업이 되는 등 시대 흐름에 따라 정미소를 폐업하게 됐다"고 회상했다.

정지윤기자 yooni@yeongnam.com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
조민희 인턴기자 alsgml0656@yeongnam.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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