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훌리거니즘

  • 이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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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11-08 06:50  |  수정 2023-11-08 07:00  |  발행일 2023-11-08 제27면

'축구로 해가 뜨고 해가 진다'는 영국에선 과거 한때 '축구는 속물'이라는 폄훼가 있었다. 마거릿 대처(1925~2013) 총리는 축구라면 질색을 했다. 축구를 사회적 병폐, 축구 팬을 벌레처럼 여겼다. '훌리거니즘(Hooliganism·축구장 안팎에서 훌리건들이 벌이는 집단적 폭력 행위)' 때문이었다. 오죽했으면 그가 아르헨티나와의 전쟁(1982)을 핑계로 "월드컵 참가를 재고하면 좋겠다"고까지 했을까. 기회만 되면 훌리건을 손보려 했다. 마침내 구실을 찾았다. 영국 축구 역사상 최대의 비극인 '힐스보로 참사'(1989)였다. 리버풀 대(對) 노팅엄 포레스트전이 열린 힐스보로 축구장에서 94명의 관중이 깔려 숨진 것. 명백한 인재(人災)인데도 정부가 훌리건 탓으로 몰고가 국민적 저항을 사기도 했다. 이 사고를 계기로 영국에선 훌리거니즘이 다소 숙졌지만 아직까지 뿌리 뽑히지 않고 있다.

훌리건(Hooligan)이란 말은 19세기 말 런던에 있었던 아일랜드인 폭력배 '패트릭 훌리건'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영국은 물론 유럽 대륙에서도 훌리건은 여전히 골칫덩이다. 잊힐 만하면 사고를 친다. 지난달 30일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축구 훌리건 난동이 있었다. 원정팀 리옹이 무자비한 공격을 받았다. 훌리건들은 리옹 팀 버스에 돌과 맥주병을 마구 던졌다. 경기는 취소됐고, 파비오 그로소 리옹 감독은 큰 부상을 입었다. 그로소 감독은 "자칫 비극이 될 수도 있었다. 미래를 위한 교훈이 되길 바란다"며 일단 훌리건들을 용서했다. 이런 대인배(大人輩)가 또 있을까. 폭력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메시지를 그는 관용의 언어로 응수했다. 이창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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