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축복을 비는 마음…집을 둘러싼 가혹한 현실 속 마음의 이야기

  • 백승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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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11-10  |  수정 2023-11-10 08:20  |  발행일 2023-11-10 제16면
전세사기 대란·청년 니트족

애써 외면해온 저 너머 진실

자신이 처한 처지 변호·항변

여덟개 삶에서 건진 희망조각

[신간] 축복을 비는 마음…집을 둘러싼 가혹한 현실 속 마음의 이야기
여덟 편의 작품이 담긴 김혜진 작가의 소설집 '축복을 비는 마음'은 집을 둘러싼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가 그려진다. 〈영남일보 DB〉
[신간] 축복을 비는 마음…집을 둘러싼 가혹한 현실 속 마음의 이야기
김혜진 지음/문학과지성사/292쪽 /1만6천원

대구 출신 소설가 김혜진의 세 번째 소설집이다. 김혜진은 이름 석 자만으로 하나의 장르를 쌓아 올린 작가로 평가 받는다. 중앙장편문학상, 신동엽문학상, 대산문학상 등 굵직한 문학상에 이어 올 8월 김유정문학상을 수상한 후 펴내는 첫 책이다.

소설집에는 여덟 편의 이야기를 담았다. 2021·2022년 젊은작가상 수상작 '목화맨션'과 '미애', 2022년 김유정문학상 수상 후보작 '축복을 비는 마음' 등 발표 시점부터 기대를 모아온 수작들이 수록됐다.

특히 여덟 편 모두 집에 관한 이야기다. 하지만 집보다는 집을 둘러싼 사람들의 모습을 김혜진 특유의 문체로 그려낸다. 전작 '불과 나의 자서전'에서 다룬 주거 문제, '경청'의 주요 화두였던 소통의 가능성, '9번의 일'에서 거론한 노동 문제 등 사회 전반에 걸친 문제의식이 소설집 곳곳에 녹아 있다.

소설 속 등장인물이 놓인 처지는 가혹하고 절실하다. 전세 사기 대란, 기혼 유자녀 여성의 우울증, 청년 '니트족' 등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지만 애써 외면해온 문제들이다. 개개인의 슬픔과 고통이 사회적 현상과 맥을 같이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이번 소설집의 미학은 통계학적 수치와 뉴스 보도 그 너머의 진실을 알려준다.

김혜진은 소설 속 인물들에게 '집주인' '세입자' '고용주' '고용인'이라는 간단한 칭호를 붙이거나, '엄마' '애인' '친구'라는 통념상의 역할을 부여하는 대신, 그들이 한 사람으로서 겪는 내밀한 어려움에 주목한다. '어쩌자고 서로의 사정을 이렇게 속속들이 알아버렸을까'('목화맨션') 싶지만, 서로의 입장과 사정이 얽히고설키며 발생하는 역학 관계에 주목한다.

여덟 편의 이야기는 남루한 현실 속에서 기어코 희망의 조각을 건져 올린다. '미애'는 독서 모임 엄마들과 어울리며 평범하게 살 수 있겠다는 희망을 떠올리고('미애'), '세미'는 길바닥 어딘가 중고로 팔 만한 물건이 있기를 희망한다('20세기 아이').

'만옥'은 남편의 병이 호전될 수 있으리란 희망을 품고('목화맨션'), '남우 사모님'은 부동산 임장을 다니며 좋은 기회가 찾아오리란 희망을 놓지 않는다('이남터미널'). 또 '현지'는 한때 친했던 '정민'과 다시 화해할 수 있으리란 희망을 가진다('자전거와 세계'). '주인' 역시 사랑하는 애인을 보러 가는 길에 희망적인 확신에 사로잡힌다('사랑하는 미래'). 크고 작은 희망을 빌미 삼아, 그들이 얻는 것은 약속된 미래가 아니라 현재를 버티는 힘이다. 잠깐 떠올랐다 사라지는 신기루일지언정 누군가에겐 지금을 살게 하는 아름다운 불빛이다.

대부분의 등장인물은 상대의 고통 앞에서 이해나 공감을 표하기보다는, 누가 더 불행한지 겨루는 사람들처럼 자신의 처지를 변호하고 항변하기 바쁘다. 현실에선 좀처럼 발언권을 얻지 못하는 이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마음껏 내뱉는 장면은 어떤 해방감을 선사한다. 작가는 이를 통해 솔직한 오해가 섣부른 이해보다 효과적이란 사실을 드러낸다.

김혜진은 '작가의 말'에서 "이 책에 실린 소설은 모두 집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어쩌면 집에 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집을 둘러싸고 있는 어떤 마음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밝힌다. 그러면서 소설을 통해 지금 당신이 머무르는 집의 안녕을 빈다.

백승운기자 swbac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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