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얍 멀더스(Jaap Mulders) 렘브란트순회재단(Stichting Rembrandt op Reis) 대표가 지난달 31일 대구미술관에서 특별강의를 펼치고 있다. 〈대구미술관 제공〉 |
지난달 31일 대구미술관에서 개막한 '렘브란트, 17세기의 사진가' 전시가 첫날부터 '오픈런'이 이어지며 인기를 얻고 있다. 내년 3월17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는 서양미술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화가이자 '빛의 화가'로 불리는 렘브란트 판 레인(Rembrandt van Rijn, 1606~1669)의 동판화 120여 점을 감상할 수 있다. 전시작들은 네덜란드 렘브란트순회재단(Stichting Rembrandt op Reis)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이다. 전시 개막과 함께 대구를 찾은 렘브란트순회재단의 얍 멀더스(Jaap Mulders) 대표와 이번 전시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 봤다.
네덜란드 위대한 화가, 동판화史 독보적 인물
벨기에展서 훌륭한 대구미술관 소개 받아 인연
'병자를 고치는 예수' 등 탁월한 작품 120점 선봬
대구 시민, 작품 진지하게 감상해 좋은 인상
큰 규모로 열린만큼 걸작 감상 좋은 기회 될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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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 '병자를 고치는 예수'. 이야기를 전달하는 렘브란트의 능력과 다양한 인물들의 표현 등이 매우 인상적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대구미술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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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 17세기의 사진가' 전시가 열리고 있는 대구미술관 내부 전경. 〈대구미술관 제공〉 |
▶렘브란트의 동판화 작품을 대구에서 선보이는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자신에 대한 소개를 부탁한다.
"오랫동안 기업을 운영하다 네덜란드 국립발레단의 사업이사로 공직에 있었다. 현재는 네덜란드의 노르트홀란트주에 렘브란트순회재단을 설립해 대표직을 맡고 있다. 20여 년 전 우연히 렘브란트의 동판 한 점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 동판을 구입한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그의 동판화를 계속해서 수집해 오고 있다. 현재는 세상에 남아 전하는 렘브란트 동판화 300여 종류 중 220여 점을 소장하고 있는데, 컬렉션의 규모가 커지면서 렘브란트의 동판화를 감상하는 기쁨을 많은 이들과 나누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렘브란트순회재단을 설립했고, 실제로 여러 나라와 도시들에서 전시 중이다."
▶국내 도시 중 전시장소로 대구를 선택한 이유는.
"올해 초 벨기에의 앤트워프에 있는 판화전문 미술관 뮤지엄드리드(Museum De Reede)에서 제가 소장하고 있는 렘브란트 동판화 80여 점으로 '사진가 이전의 사진가(Fotograaf Avant la Lettre)'라는 제목의 전시를 4개월간 열었다. 뮤지엄드리드는 생긴 지 얼마 안 되는 비교적 작은 미술관이지만, 대표인 하리 루텐씨의 예술에 대한 열정으로 매우 좋은 전시들을 선보이는 훌륭한 미술관이다. 우리의 예상을 넘어선 호응 덕분에 훌륭한 전시를 선보일 수 있었고, 이렇게 좋은 전시를 이대로 끝내기가 아쉽다는 생각을 했다. 이때 하리 루텐 대표가 자신과 매우 오랜 인연이 있는 한국에서 이 작품들을 전시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제 소장품은 유럽을 벗어나 전시된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대구미술관을 방문한 적 있는 하리 루텐 대표가 (대구미술관에 대해) 매우 훌륭한 미술관이라고 이야기하며 전시를 제안해 흔쾌히 동의했다. 결과적으로는 지금까지 제 소장품으로 기획한 모든 전시들 가운데 가장 훌륭하고 아름다운 전시를 한국의 대구에서 하게 되어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렘브란트는 네덜란드가 세계의 바다를 지배하던 최전성기 때 활동한 화가다. 네덜란드인과 세계인에게 렘브란트는 어떤 예술가로 기억되고 있나.
"미술의 역사를 연구하는 전문가는 아니지만 예술을 사랑하고, 렘브란트를 사랑하는 네덜란드 사람으로서 렘브란트는 그가 남긴 위대한 예술로 말미암아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세계미술은 물론 인류의 역사에 영원히 거인으로 남을 인물로 믿는다. 위대한 화가로 길이 남을 작가는 렘브란트 외에도 물론 여럿 있지만, 판화, 특히 동판화의 역사에 있어서 렘브란트는 독보적인 인물이다."
▶렘브란트의 동판화를 수집한 계기는 무엇인가. 컬렉션의 규모와 대구에 전시된 주요 작품에 대한 설명을 부탁한다.
"오래전 우연히 렘브란트의 동판을 보게 되었는데, 그 동판을 본 순간 거기에 오래전 위대한 예술가의 손길이 머물렀었다는 사실에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그 뒤로 30년 가까운 시간 동안 기회가 될 때마다 렘브란트의 동판화를 계속해서 수집했고, 지금은 세상에 남아 있는 그의 동판화 중 상당 부분인 220여 점을 소장 중이다. 지금 대구미술관에 전시되고 있는 작품들은 뮤지엄드리드에서 전시된 80여 점에 40점 정도를 더한 120점인데, 저와 대구미술관이 여러 차례 의견을 나누며 렘브란트의 동판화 중 중요하고 대표적인 작품들을 선택했다. 렘브란트의 작품은 모두 훌륭하지만 대구미술관 전시의 '성경 이야기' 파트에 소개되고 있는 '병자를 고치는 예수'는 매우 인상적이다. 이 작품은 마태복음의 전체 이야기를 한 화면에 담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야기를 전달하는 렘브란트의 능력과 다양한 인물들의 표현 등이 매우 탁월한 작품이다. 또 '눈이 멀게 된 토빗'에서 보이는 아버지의 혼란스러운 감정을 전달하는 표현도 놀랍다.'선한 사마리아인'에 보이는 '사진가'와 같은 면모는 렘브란트의 동판화에서 제가 가장 주목하고, 매력적으로 느끼는 부분이다. 그는 가능한 한 납득할 수 있는 '진짜' 현실을 그려냈는데, 저는 렘브란트가 보여주는 '이야기를 담은 이미지의 순간적인 표현'을 매우 매력적으로 생각한다."
▶'렘브란트, 17세기의 사진가' 전시에서 관람객들이 눈여겨봐야 할 점은 무엇인가.
"렘브란트의 동판화를 수십 년간 감상하고 사랑해 온 수집가로서, 저는 기회가 될 때마다 '렘브란트가 현대에 태어났다면 화가도, 판화가도 아닌 사진가가 되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동판화에 나타나는 그의 경이로운 장인정신과 더불어 당시 사람들과 생활상, 세상의 모습 등 여러 가지 폭넓은 주제들을 매우 사실적으로 담아낸 그의 시선에 주목해 전시를 감상하길 바란다. 렘브란트의 동판화를 오랜 세월 감상해 온 저 역시 종종 그의 판화에서 새로운 부분들을 발견하게 되고, 놀라고 감탄하곤 한다. 작품들을 천천히 깊이 들여다보길 기대한다."
▶대구는 대한민국 근현대미술 발상지다. 대구시민과 대구에 대한 인상은 어땠나.
"이번 방문은 저의 첫 번째 한국 방문이고, 당연히 대구도 처음이다. 아쉽게도 여행의 스케줄상 대구미술관의 전시 개막행사에 참석하고 그 다음 날 관람객을 대상으로 특별강의를 한 후 바로 대구를 떠나야 했기 때문에 대구와 대구사람들을 자세히 알 기회는 없었다. 하지만 전시 개막날 미술관을 찾은 많은 대구시민이 작품을 매우 진지하게 감상하고, 저의 강의를 경청하는 모습에서 매우 좋은 인상을 받았다."
▶끝으로 대한민국의 렘브란트 애호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렘브란트의 동판화를 이렇게 훌륭한 전시를 통해 한국에 소개하게 되어 무척 기쁘다는 말을 다시 드리고 싶다. 현재 남아 있는 렘브란트의 동판화는 세계의 여러 미술관과 개인 소장자들이 나누어 소장하고 있고, 렘브란트하우스뮤지엄이나 암스테르담국립미술관(라익스뮤지엄) 등에서 상당히 많은 수의 동판화를 소장하고 있지만, 이번 대구미술관 전시만큼 잘 선택된 작품목록과 큰 규모로 렘브란트의 동판화를 다시 감상하는 것은 앞으로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한국에 렘브란트를 사랑하는 미술 애호가들이 많을 것으로 생각한다. 렘브란트의 걸작 동판화를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치지 말고 많은 분들이 이 전시를 보게 되기를 바란다."
임훈기자 hoony@yeongnam.com

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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