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현준의 시네마틱 유니버스] 원주 단관극장, 역사 속으로…극장은 사라져도 추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 권현준 대구영상미디어센터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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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11-24 08:41  |  수정 2023-12-11 15:59  |  발행일 2023-11-24 제14면
'60년 국내 최고령' 상영관 철거 당해
시민과 영화인의 보존 노력 물거품
유산 보존 '日 후카야시네마'와 대조
노후도시엔 활력, 노인엔 새 일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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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시 평원동 아카데미극장의 철거 작업이 본격 시작되면서 벽면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극장의 모습을 철거 반대 측 시민이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극장이 사라졌다.

지난 10월30일 국내에서 원형 그대로를 보존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극장인 원주아카데미극장(이하 아카데미극장)이 철거되었다. 60년간 한자리를 지켜왔던 극장은 하루아침에 사라졌고, 그 자리는 폐허가 되었다. 극장을 보존하고자 노력했던 사람들의 마음도 폐허가 되긴 마찬가지였다.

아카데미극장은 1963년에 개관했다. 2023년은 개관 60주년이 되는 해였다. 전국에 몇몇 오래된 단관극장이 여전히 남아 있다. 하지만 그 극장들은 화재나 전쟁 등으로 전소되어 새로 지어진 경우라 원형 그대로 남아 있는 단관극장은 아카데미극장이 유일하다고 한다. 이러한 아카데미극장은 특이하게도 극장주의 살림집이 극장 안에 딸려 있고, 필름 영사기 등 극장 내의 여러 물품들도 보존이 잘 되어 있어 건축물 혹은 문화재로서의 보존 가치가 상당히 높다는 평을 받고 있었다. 물론 이 같은 물리적 가치 외에도 이곳을 드나들었던 수많은 사람들의 추억 역시 이곳을 새로운 문화유산으로 탈바꿈할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가치이기도 했다.

극장 산업이 멀티플렉스 중심으로 재편되고 결국 2006년 운영이 중단되면서 아카데미극장은 오랫동안 방치됐다. 하지만 아카데미극장의 보존 가치가 점차 대두되면서 2016년 시민들의 보존 캠페인이 시작되었고, 2020년에는 코로나 시국임에도 '안녕, 아카데미'라는 이름의 행사를 통해 수많은 시민이 극장을 방문하기도 하였다. 극장 문을 닫은 지 14년 만에 사람들의 발길로 북적였고, 극장과 극장 주변의 활력이 되살아날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커졌다. 이러한 활동은 오래된 극장이 가지는 역사적, 문화적, 사회적 가치가 무엇인지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건축이나 문화예술 분야 등으로 극장 보존이라는 이슈가 확산되도록 하였다. 2021년 아카데미극장은 한국내셔널트러스트와 문화유산국민신탁이 공동주최하는 제19회 '이곳만은 꼭 지키자!' 시민공모전에서 문화재청장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결국 시민들의 이러한 노력은 2022년 1월 원주시의 아카데미극장 매입으로 '보존'이라는 결과로 이어졌었다.

하지만, 상황은 하루아침에 바뀌었다. 2022년 지방선거 이후 들어선 민선 8기 원주시는 아카데미극장 복원 사업 중단을 선언했다. 시민들은 지난 수년간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일방적인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시정 정책토론'도 청구하였지만, 석연치 않은 이유로 반려되었고, 그 이후 아카데미극장 보존에 관한 공론의 장은 다시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지난 10월30일 아카데미극장은 영원히 시민들의 곁에서 사라졌다. 속전속결이었다.

'우리나라의 극장은 한국영화의 제작보다 먼저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과거 영화를 상영했던 공간은 거의 다 사라지고 있습니다. 1913년 설립된 국도극장은 1935년 재건축 당시의 골격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지만 1999년 호텔 건축을 위해 소리소문없이 철거되었고, 1907년 설립된 단성사는 2005년에 멀티플렉스로 재개장했다가 문을 닫았습니다. 2005년 12월에는 1935년에 설립된 스카라극장이 문화재청의 근대문화재 지정에 반대하는 건물주에 의해 기습적으로 철거되기도 했습니다. 2006년 11월에는 1944년 문을 열었던 부산 삼일극장이, 2011년 5월에는 1959년 개관한 부산 범일동의 삼성극장이 철거되었습니다. 2018년 12월엔 1944년 문을 연 제주도의 가장 오래된 극장인 현대극장이 철거되었습니다. 각 극장들은 지역민들에 의해 보존의 필요성이 제기되었지만, 안타깝게도 보존되지 못했습니다.'

철거 결정이 있고 난 뒤, 아카데미극장의 철거 중단을 촉구하는 전국의 영화인과 시민들의 성명서에 담긴 내용이다. 지난 세월, 극장이라는 문화유산이 알게 모르게 우리 곁에서 계속 사라져갔고, 결국 우리 사회는 아직 극장이라는 문화유산의 보존을 통해 얻어지는 문화적, 경제적 가치에 대해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채 남아있는 셈이다.

보존해야 하는 이유는 충분했지만, 철거해야 하는 이유는 충분치 않았다. 원주시는 원도심 상권 활성화를 위해 아카데미극장 부지에 주차장과 새로운 문화공간 조성을 약속했지만, 그것이 아카데미극장 보존을 통해 얻는 기대효과보다 과연 크다고 할 수 있을까. 한국도 그렇지만 일본 역시 고령화, 도심공동화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시재생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일본 사이타마현 후카야시에는 후카야시네마라는 극장이 있다. 이 극장은 300년 된 술공장을 개조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고령화된 도시에 이와 같은 '실버영화관'이 들어서면서 노인들은 다시 문화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고, 극장과 연계된 노인들을 위한 일자리도 만들어질 수 있었다. 후카야시네마는 이처럼 쇠퇴해가는 도시를 극장이라는 문화공간을 통해 어떻게 변화할 수 있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사례이다. 이 밖에 영국 클리브던의 커존시네마, 프랑스 파리의 룩소극장, 일본 다카사키시의 다카사키덴키관 등 오래된 극장을 문화유산으로 보존함으로써 도시의 새로운 활력으로 재탄생된 사례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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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현준 (대구영상미디어센터 사무국장)

아카데미극장 역시 이러한 가능성을 충분히 가지고 있었다. 이제 그 가능성마저 철거되었지만, 아카데미극장은 언젠가 다시 부활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과정을 통해 극장이라는 문화적 자산의 소중한 가치를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지난 12일 아카데미극장 위법철거를 규탄하기 위한 시민대행진에 참여한 시민들은 한 장의 극장티켓을 받았다. 그 티켓 뒷면에는 아카데미극장이 다시 열리는 그날, 이 티켓을 가져오면 무료로 영화를 관람할 수 있으니 잘 간직해 달라고 적혀있었다. 언제가 이 티켓을 사용할 날이 꼭 오리라 믿는다.

대구영상미디어센터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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