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시론] 후백제와 상주, 문경

  • 박진관
  • |
  • 입력 2023-11-29 07:00  |  수정 2023-11-29 07:01  |  발행일 2023-11-29 제27면

2023112801000927700038171
박진관 중부지역본부장

신라사람이던 견훤은 스스로 세운 나라를 자신이 망하게 한 후백제의 창업 군주다. '정개(正開·바르게 연다)'라는 후백제 연호에서 보듯 견훤은 신라 하대 부패와 악습을 혁파하고 새로운 왕국을 개국하고자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고려에 귀부했다. 그러나 35년간의 재위 기간 그의 행적에 따른 유·무형의 역사·문화적 유산은 전국 곳곳에 흩어져 있다.

견훤과 후백제가 작년 12월28일 후백제역사문화권이 '역사문화권정비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에 통과되면서 재조명받고 있다. 이 법은 고대 문화유산을 연구·조사·발굴·복원·정비함으로써 지역 문화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 지금까지 고구려·신라·백제·탐라·가야·마한·예맥·중원역사문화권이 해당됐다. 재작년 11월 전북 전주·완주·장수·진안과 경북 문경·상주, 충남 논산 등 7개 시·군이 '후백제문화권 지방정부협의회'를 발족해 역사 인식을 공유한 것이 법 통과에 촉매가 됐다. 여기서 시·도 간 학술대회와 관련 기획전시를 하고 연 2회 단체장 회의를 여는 등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

후백제 관련 시·군 가운데는 전주시가 가장 몸이 달았다. 전북도 국회의원과 전주시장이 앞장서고 있다. 전주시는 '왕의 궁원'이라는 프로젝트를 설계해 국가 예산을 지원받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후백제 왕궁과 정원을 복원하는 등 20년간 1조5천억원을 투입해 유·무형 역사문화 자원을 하나로 엮어 관광벨트를 만드는게 요지다. 전북도도 이에 호응해 지난 5월 후백제 역사문화권 정비 전담팀(TF)을 발족했다. 지난 2월 열린 후백제역사문화권 7개 시·군 회의 때는 역사콘텐츠 사업을 공유하기도 했다. 하지만 경북도는 신라의 본산이고 문경, 상주는 옛 신라의 영역이라 그런지 협력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견훤이 이상을 펼친 곳은 호남이지만, 그가 태어나고 자란 곳은 경북 문경과 상주라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신라의 심장 경주를 비롯해 대구, 안동, 구미는 고려-후백제의 주요 전적지였다. 이곳에 남아있는 옛 지명과 성씨, 설화와 전설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이 가운데 문경시 가은읍(옛 상주 가은현)은 특별한 곳이다. 갈전리 산170-1 일원에는 후백제를 세운 견훤왕의 탄생설화가 전해지는 금하굴을 비롯해 숭위전, 말바위와 궁터, 아개동, 아차동, 견훤산성, 가은성, 회양산성, 근품산성, 치마단 등 견훤 관련 유적지가 많다. 문경시는 5일장인 아자개시장을 올해부터 토요장(그린마켓)도 개설하고 지난 10월엔 '가은에 취하다'를 주제로 가은아자개시장 전통 축제를 처음 열었다. 그 이전인 2000년 대하드라마 '태조 왕건' 방영을 기점으로 문경새재와 가은에 드라마 오픈세트장을 마련했다. 이처럼 후삼국쟁패기 문경은 한반도 동서남북을 연결하는 주요 통로였다. 고대~조선까지 상주가 가은을 안고 있었지만, 대일항쟁기 일제가 문경을 경제적 수탈 목적으로 개발하면서 가은이 문경에 편입됐다. 이처럼 문경과 상주는 역사적으로 한몸이라 할 수 있다.

필자는 역사문화정비특별법에 홍보 및 교류사업도 들어있기에 문경, 전주 등이 주최가 돼 후삼국쟁패기 견훤과 후백제를 주제로 하는 실경뮤지컬을 제작하고 이를 스토리텔링화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엔 서라벌궁성, 동화사 동수대전, 고창전투, 일리천전투도 포함하면 금상첨화다. 7개 시·군에 더해 대구, 광주, 경주, 안동, 구미에서 순회공연을 하면 널리 홍보도 되고 동서화합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박진관 중부지역본부장

기자 이미지

박진관 기자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