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녹비왈자(鹿皮曰字)

  • 남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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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12-05  |  수정 2023-12-05 07:00  |  발행일 2023-12-05 제23면

TV 연예나 오락프로그램의 자막이 다소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얼마 전 보도에도 이러한 예능 프로그램의 저속 표현을 우려하는 기사가 보였다. 재미를 추구하다 보니 일정한 기준을 지키지 못하고 선을 넘어버린 탓이다. 여기에 지나치게 줄인 말은 마치 외래어나 외계 언어처럼 느껴질 정도로 생소한 때도 있어 기성세대가 얼른 알아듣지 못해 세대 간 단절을 부르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예능 프로그램을 즐겨보지는 않지만, 자막 처리에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이 있다. 누군가의 말을 인용할 때 "누구누구 日 뭐라고 했다"라는 식의 표현이다. "누가 말했다"를 줄임말 식으로 쓰다 보니 '日' 자를 사용했다. 필자가 보기에는 '가로 曰'이 들어가야 할 자리에 '날 日' 자가 잘못 사용된 것으로 생각한다. 이러한 실수는 어느 한 프로그램만 아닌 것 같다. 유심히 지켜보면 대부분 예능뿐 아니라 교양이나 시사 프로그램에서도 가끔 이 같은 사례가 나타난다. 혹시 눈이 밝지 않아 잘못 본 것인가 의심도 해봤지만 가로 曰이 아닌 날 日 자가 분명하다.

속담에 '녹비왈자(鹿皮曰字)'라는 말이 있다. 사슴 가죽인 녹비(鹿皮)에 쓴 가로 왈(曰) 자는 가죽을 아래위로 잡아당기면 날 일(日)자가 된다는 뜻이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해석이지만 두 글자는 분명히 다른 글자다. 요즘 연출자나 작가들이 한자를 배우지 않은 세대인지는 몰라도 두 글자가 같은 것으로 오해하지 않도록 고쳐지길 바란다. '공자 왈, 맹자 왈'을 외치지 않더라도 가로 曰 자가 '가로되' '말하기를'의 뜻을 가진 한자라는 것은 잘 알려졌기에 아쉬움이 크다.

남정현 중부지역본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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