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情만 넘치는 곳 아니에요"…전통·미래 공존하는 삶의 터전

  • 박영민,김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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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1-12 08:28  |  수정 2024-01-12 08:31  |  발행일 2024-01-12 제22면

기름에 지글지글 구운 납작만두,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족발, 넘칠 듯 말 듯 가득 담긴 칼국수. 검은 비닐봉지 속 먹거리와 함께 '정(情)'을 가득 담아 주는 곳, 바로 전통시장이다. 이곳 상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지나간 날과 다가올 미래가 함께 살아 숨쉰다. 전통시장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본다.

◆전통시장 터줏대감 상인 
"규모만큼 역사 깊은 대형시장…상인간 팀워크가 큰 장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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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시장에서 40년간 의류장사를 한 김순금씨가 가게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태강기자

시간이 쌓여 결과 나오는 곳
오랜 장사 비결은 겸손·친절


대구에는 서문시장·관문상가시장 등 크고 유명한 '전통시장'이 많다. 규모만큼 역사도 깊다. 수십 년 세월 동안 한결같이 자리를 지켜온 상인들. 이들에게 전통시장은 삶 자체다.

서문시장에서 41년째 속옷을 판매하고 있는 김순금(여·68)씨는 전통시장의 장점으로 상인들의 '정'과 '팀워크'를 꼽았다. 김씨는 "아침에 먼저 나온 사장님이 다른 가게 문들도 다 열어준다. 가끔은 자리를 비우면 계산도 대신해 준다"며 "손님과의 관계도 일반 마트보다 정이 넘치고 사람 냄새가 난다"고 말했다.

박삼수(72)씨는 현재의 '관문상가시장'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이곳에서 옷 장사를 시작했다. 남구에 있는 관문상가시장은 예전 '관문시장' 옆에 점포가 늘어나면서 2005년 공식 등록된 시장이다. 올해로 46년 차 장사에 접어든 박씨는 "아케이드는커녕 파라솔도 마음대로 설치 못 하던 시절부터 장사했다. 전통시장이 힘이 없던 시절 상인회의 중요성을 깨닫고 10년째 상인회장을 맡고 있다"고 했다.

생선 도매가게에서 화물차를 운전하던 권백석(68)씨는 43년 전부터 관문상가시장에서 생선을 판매하고 있다. 권씨는 장수비결로 '겸손'과 '친절'을 꼽았다. 그는 "손님들에게 말 한마디라도 친절하게 하려고 한다. 그러면 자연스레 단골손님이 쌓인다"며 "관문상가시장은 한 단계씩 성장하는 곳이다. 시장은 한 번에 많은 것을 이루려는 사람이 아니라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살려고 하는 사람이 오는 곳이다. 젊은 상인이 전통시장에 많이 도전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전통시장 스며든 젊은 사장 

"타지손님 많고 외국인도 방문…경쟁력 키우려면 변화가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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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문상가시장에서 1년째 닭다리 등을 판매하고 있는 송진근씨가 음식을 담고 있다. 박영민기자

유동인구 꾸준히 유지하려면
메뉴·상품 지속적 개발해야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서 조사한 2020년 전통시장·상점가 및 점포 경영실태조사에 따르면 전통시장 점포주의 평균 연령은 59.7세다. 연령별 분포에서도 60~69세가 36.9%로 가장 높은 비율을 나타냈다.

환갑은 넘어야 명함을 내밀 수 있는 이곳에서 30~40대 젊은 사장들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전통시장 점포주 중 30~40대의 비율은 20%가 채 안 되지만 이들이 몰고 오는 변화의 바람은 크고 중요하다.

송진근(43)씨는 2년 전 다니던 대기업 생산직을 박차고 나와 관문상가시장에서 친구와 함께 요식업을 시작했다. 송씨는 유동인구가 많다는 점이 관문시장을 선택한 이유라 말했다.

4년 전 서문시장에 자리 잡은 전윤환(36)씨는 30대 초반에 장사를 시작했다. 서문시장에 오기 전 대구 중구의 '김광석 거리'에서 옷가게를 운영했던 전씨는 한계를 느끼고 유동 인구가 더 많은 전통시장을 선택했다. 그는 "최근에는 젊은 사람도 서문시장과 같은 전통시장으로 많이 모이고 있어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또 "서문시장은 타지에서도 많이 오고 외국인 관광객도 방문한다. 다양한 사람이 방문하니 더 활기찬 느낌이 들어 좋다"며 웃었다. 그러면서도 전통시장이 더 젊어지기 위해서는 '정'만으론 부족하다고 했다.

송씨는 "전통시장의 정겨운 분위기, 유동 인구는 분명한 장점이지만 만만하게 봐서는 안 된다"며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인 방문을 유도하기 위해 다양한 메뉴를 개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시장 새 길 개척하는 청춘들

플리마켓·야시장 새로운 시도…기존시장 더해져 시너지 생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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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달성군 현풍읍 현풍백년도깨비시장 청춘난장(청년몰) 전경. 김태강기자

현풍청년몰 구성원 평균 30대
젊은 감각 다양한 업종 '활력'


1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대구 달성군 현풍 백년도깨비시장은 2019년 청년몰 '현이와 풍이의 청춘신난장'이 들어서면서 젊은 감각이 기존의 전통시장과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청년몰은 평균 30대 청년들이 직접 인테리어에 나서 음식·공예 등 현재 18개 업소가 운영 중이다. 현재 청년몰에는 공실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많은 청년이 지원하고 있다.

청년몰에는 이제 성인이 된 '청년 사장님'도 있다. 올해 초부터 버거집을 운영한 이성호(20)씨는 "제빵 공장에서 잠깐 일을 했었는데, 그 경험을 살려 청년몰에 도전했다. 청년몰은 임대료도 싸고 지원을 많이 해줘 진입장벽이 높지 않았다"며 "청년몰은 가족 같은 분위기로 서로 도우면서 장사하는 것이 장점"이라고 말했다.

2년 넘게 이곳에서 공방을 운영 중인 최정은(여·31) 청년몰 회장은 "어느 자영업이나 열심히 하지만 이곳 상인들은 청년이기에 플리마켓, 야시장 등 더욱 열정적으로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 한다. 전통시장 상인들도 처음에는 참여를 안 하다가도 이듬해에는 함께하는 경우가 많다"며 "청년몰이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청년몰은 장사를 시작하는 상인들에게 지원해주는 것이 많다. 여러 지원이 따르는 만큼 가벼운 마음보단 굳은 의지가 따른다면 좋은 기회의 장이 될 수 있다"며 "여러 청년들에게 희망이 되는 청년몰이 될 것"이라고 했다.

박영민기자 ympark@yeongnam.com
김태강기자 tk11633@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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