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뉴스] 대구 근대 산업화의 출발지 '칠성동'

  • 송은석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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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2-06 11:35  |  수정 2024-02-07 08:42  |  발행일 2024-02-07 제24면
'칠성바위'와 '별별상상이야기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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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도시철도1호선 대구역 4번 출구 광장에 있는 칠성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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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상상이야기관 입구에 설치된 칠성바위 조형물.

대구 근대 산업화는 대구 북구 칠성동에서 시작됐다. 1905년 지금의 칠성동 대구역 자리에 '대구정차장'(대구역)이 처음 개통됐다. 개통과 동시에 대구역 주변으로 많은 창고와 공장이 들어섰다. 일제강점기 때는 경제권을 쥔 일본인들이 대구역 인근에 많이 거주하며 공장·상점·농장 등을 경영했다. 광복과 6·25 전쟁 이후에는 많은 피난민이 이곳으로 몰려들어 피난민촌이 형성됐다. 기존 주민에다 피난민까지 더하자 칠성동은 일자리와 생필품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다. 이를 해결해준게 6·25 전쟁 때 피해를 입지 않은 칠성동 일대 많은 공장, 농장이었다. 능금시장으로 시작해 청과물, 생필품을 주로 취급했던 칠성동 북문시장(칠성시장 전신) 역시 대구 근대 산업화에 큰 역할을 했다.

일제강점기 때 대구 최초 공업단지로 지정된 곳이 대구역 북쪽지역인 칠성동·침산동·태평로3가·노원동 일대다. 1960년대 대구1공업단지로 성장한 이 지역 주요 산업은 섬유·기계·고무·연탄이었다. 당시 이곳에서 시작해 세계로 뻗어나간 기업이 여럿 있다. 비누회사 삼공유지로 출발해 한때 재계 6위에 올랐던 쌍용그룹, 대성연탄에서 세계적 에너지 전문기업으로 성장한 대성그룹, 삼성 신화의 신호탄이 됐던 제일모직. 고무신을 만들던 평화고무공업사와 자전거 부품을 생산한 삼립자동차공업사는 각각 평화산업, 에스엘 등 세계적 자동차 부품회사로 성장했다.
당시 칠성동에는 대구를 대표하는 명소도 두 곳 있었다. 지금의 칠성원시장 일대에 있었던 도수원(刀水園)과 대구콘서트하우스 인근에 있었던 칠성바위다. 거룻배가 떠다니는 연못과 정자를 갖춘 도수원은 1946년 북문시장을 개설할 때 매립되어 사라졌다. 칠성동 지명유래가 된 칠성바위는 의북정(依北亭)이란 정자와 10여 그루 아름드리 미루나무가 있었고 기도처로도 유명했다. 지금 칠성바위는 대구도시철도1호선 대구역 4번 출구 광장으로 옮겨져 있다.

근대 대구의 집회·광장문화 중심지 역시 칠성동이었다. 1931년 개관한 공회당과 대구역 광장이 대표적이다. 육군중앙극장, KBS대구방송국으로도 사용된 공회당은 1970년대 초 철거되고 그 자리에 대구시민회관이 건립됐다. 옛 대구역 광장은 지금보다 훨씬 넓었다. 1971년 대구역지하도가 개통되면서 광장의 절반 정도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칠성동의 역사를 알고 싶다면 두 곳을 방문하면 된다. 대구역 뒤편에 있는 칠성바위와 별별상상이야기관이다. 칠성동 지명의 유래가 된 칠성바위는 칠성동에서 가장 오래된 유적이다. 2020년 개관한 별별상상이야기관은 칠성동의 역사와 문화, 옛 칠성동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전시관이다.

글·사진= 송은석 시민기자 3169179@hanmail.net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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