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 2천명 증원 근거 밝혀라

  • 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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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2-22 06:58  |  수정 2024-02-22 06:58  |  발행일 2024-02-22 제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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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식 사회부장

전공의와 의대생, 의사들은 의대 정원 증원을 무작정 반대하는 게 아니라고 한다. 증원은 하되 속도를 조절해 달라는 것이다. 현재 3천58명에서 65%(2천명)를 한꺼번에 늘린다면 여러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한 의대생은 "5천원인 짜장면값을 갑자기 8천원으로 올리면 어느 누가 납득하겠느냐"고 했다.

정부가 10년 후 의사 1만명 안팎이 부족할 것이라며 매년 2천명씩 늘려야 하는 이유로 공언하고 있지만, 그 근거는 모호하다.

정부는 한국개발연구원(KDI·2021년), 신영석 고려대 교수(보건대학원·2019년), 홍윤철 서울대 교수(예방의학과·2020년)의 연구를 근거로 삼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 연구 보고서 어디에도 2035년에 의사 1만명가량이 부족하니 내년부터 5년간 2천명씩 의대생을 증원해야 한다고 못 박은 내용은 없다. 정부의 누군가가 자의적으로 해석해 2천명을 도출한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든다.

이들 보고서는 '소아과' '산부인과' 등 기피 과목에 대한 유인책과 농어촌 등 의료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의 공공의료 확충 방안을 핵심으로 다뤘다. 서울대 홍 교수도 21일 뉴스 채널에 출연해 "지역 간 의료 불균형에 관한 보고서인데, 빠져 있어 아쉽다"고 했다.

무엇보다 정부 스스로도 얘기하는 27년 만의 의대 증원이라는 국가적으로 중차대한 정책을 펴면서 연구용역 하나 수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기껏 내세운 게 수년 전 KDI와 대학 교수진이 발표한 연구자료뿐이다. 이마저도 저자로부터 의대 증원의 근거로 삼을 수 있는지 불명확하다는 소리를 듣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대통령까지 나서 "2천명 증원은 최소한의 확충 규모"라며 물러설 뜻이 없음을 천명했다. 대통령은 보고받는 입장이어서 그렇다 치고, 보건복지부 실무진은 어떤 근거로 2천명으로 결정했는지 국민 앞에 소상히 설명해야 한다.

의대 교육도 문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기존 정원의 65%를 단번에 증원하는데 교육에 차질이 없다고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있나. 정부는 1983년 서울대 의대 한 학년 정원이 260명(현재 135명)이었다며 의학교육의 질이 저하될 것이라는 우려를 일축했다.

40년 전 교육 현장을 지금과 동일시하는 발상 자체가 난센스다. 1980년대엔 초등학교(당시엔 국민학교) 교실도 60명 넘는 학생이 수업을 들었다. 현재는 평균 21.5명이다. 30명만 넘어도 '콩나물시루'에 비유한다. 교육부는 그동안 학급당 학생 수가 OECD 평균보다 높다며 지속적으로 이를 줄여왔다. 다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정책이었다. 그런데 의대 증원에 대한 명분으로 80년대 대학 정원을 거론하고 있으니 '쯧쯧'이란 소리가 절로 나올 수밖에.

의료계도 양보할 것은 양보해야 한다.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볼모로 집단행동을 하는 건 절대 용납될 수 없다. '정부는 의사를 이길 수 없다'는 소리는 오만의 극치다. 그렇다면 '의사가 국민을 이길 수 있나'. '강 대 강' 국면에 기름만 붓는 격일 뿐이다.

대한의사협회, 병원협회 등 기성 의사들이 나서 정부와 협의 테이블에서 마주해야 한다. 350명 증원 카드로는 국민을 설득할 수 없다. 이대로 가면 의료계도 내상이 불가피하다. 젊은 의사들을 다치게 할 순 없지 않나.

진식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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