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 토크] 아카데미 작품상·각본상 후보 '패스트 라이브즈' 셀린 송 감독 "오스카에 노미네이트…데뷔작으로 누리는 최고의 영광이죠"

  • 김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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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3-08 08:12  |  수정 2024-03-08 08:12  |  발행일 2024-03-08 제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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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오는 11일 오전 8시(미국 현지시각 10일 오후 7시) LA 할리우드 돌비극장에서 열린다. 전 세계 영화인들의 최대 축제인 시상식을 앞두고 국내외에서는 축제의 열기가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한국 영화계는 올해 그 어느 해보다 아카데미 시상식을 더욱 주목하고 있다. 한국계 캐나다인 셀린 송 감독의 장편 데뷔작 '패스트 라이브즈'가 작품상과 각본상 후보에 직행했기 때문이다. 신예감독의 데뷔작이 아카데미 최고의 영예인 작품상 후보에 오른 것은 그야말로 이변이다. 2월26일 기준 전 세계 75관왕, 210개 노미네이트의 기록을 세운 '패스트 라이브즈'가 작품상을 받으면 아시아계 최초로 데뷔작으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하게 된다. 영화 '기생충'이 화려하게 장식한 제92회 시상식에 이어 또 한 번 한국의 영화인들이 아카데미를 놀라게 할지 관심이다.

현재 극장에서 개봉 중인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는 셀린 송 감독이 영혼을 갈아 만든 작품이다. 한국의 CJ ENM과 미국 할리우드 스튜디오 A24가 공동으로 투자 배급을 담당했다. '인연'이라는 한국적 정서를 배우 유태오와 한국계 미국인 배우 그레타 리가 섬세하게 펼쳐냈다. 어린 시절 서울에서 함께 성장한 첫사랑 '해성'과 '나영'이 24년 만에 뉴욕에서 다시 만나 끊어질 듯 이어져 온 그들의 인연을 되돌아보고, 삶의 의미를 깨우치는 내용이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셀린 송 감독은 자그마한 체구와 빠른 말투를 가지고 있었다. 대화에는 막힘이 없었으며, 질문이 떨어지기 무섭게 속사포 같은 답변을 내놓았다. 풍부한 얼굴 표정만큼이나 자유로운 손짓과 몸짓을 대화 도중에 구사했다. 감독으로 데뷔하기 전 연극배우로 활동한 이력이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듯 하다. 그녀의 첫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에는 어린 시절 캐나다로 이민을 떠난 감독의 자전적 삶이 전편 가득히 스며 있다.

24년만에 재회한 첫사랑 남녀 통해
한국적 정서 '인연' 섬세하게 그려
영화 '오펜하이머'와 작품상 경쟁
'기생충' 영광 재현할 수 있을지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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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 인연을 소재로 만든 데뷔작 '패스트 라이브즈'로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로 직행한 셀린 송 감독. 오른쪽은 영화의 주요 장면들.

◆자전적 이야기 녹인 '패스트 라이브즈'

▶영화에서 '인연'이라는 단어가 자주 나오는군요.

"인생을 살면서 우리 모두는 언제든, 어디서든 누군가와 함께했던 두고 온 삶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나는 지금 서른 살이지만 내 안에는 열두 살 무렵의 내가 있고, 그 무렵의 사랑도 있는 것이죠. 굳이 다중 우주를 넘나드는 판타지 속 영웅이 아니더라도 인생을 살아가는 누구든 여러 가지 시공간을 지나가고 있기 때문에 신기한 순간과 인연을 이야기로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작은 관계의 인연이라도 우리 삶 어디에든 있고, 그중에는 특별한 인연도 있고, 지나치는 인연도 있고, 특별하지만 지나치게 되는 인연도 있어요. 그런 인연에 대한 생각들을 녹여낸 것이 이번 영화예요."

▶한국인에게는 친숙한 개념인 인연을 세계의 관객들도 이해할 수 있었을까요.

"사실 이 얘기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민자의 이야기지만 우리 모두가 비슷한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죠. 제가 아일랜드에서 겪은 일이에요. 어떤 사람이 자신은 글래스고에 살고 있는데, 더블린에 두고 온 여자친구가 생각났다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내가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 어떤 사랑을 했는지 등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영화를 받아들이는 정도가 달라질 수는 있겠죠."

▶영화로 만들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심리학자가 되고 싶어서 대학 시절 심리학을 전공했어요. 그 후 대학원에 진학해서 연극을 공부했고, 이후 10여 년간 극작가로 활동했지요. 처음에는 이 이야기를 연극으로 만들었는데, 영화로 이야기하기가 더 좋겠다는 생각에 작품을 만들게 됐어요. 한국과 미국, 두 대륙을 가로지르고 수십 년의 시간을 넘나드는 방식이 연극보다는 영화가 더 자연스럽다는 결론이 내려져 시나리오를 쓰게 됐어요."

▶영화가 선댄스영화제, 베를린영화제 등 해외 영화제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데 이어 전 세계 관객들에게도 후한 평가를 받는 듯해요.

"영화가 다루고 있는 인연이라는 개념을 한국에서는 쉽게 이해되지만 전 세계 사람들이 함께 공감할 수 있을지는 잘 몰랐어요. 영화를 보고 나온 관객들이 '인연'이라는 단어를 이야기하는 모습을 행복하게 바라보았어요. 비록 태평양을 건넌 한국 이민자의 이야기지만 누구나 어딘가에 두고 온 삶이 있을 것이고, 판타지 영화 속 영웅이 아니더라도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 듯해요."

◆아버지는 '넘버3' 송능한 감독

▶아버지가 한국에서 영화감독으로 활동하셨다는데.

"영화 '넘버3'로 관객의 큰 사랑을 받은 송능한 감독입니다. 이번에 한국에 와서 아버지가 가르친 제자들을 만났는데, 모두들 아버지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어요. 자식으로서 가슴이 찡하는 순간이었죠. 아버지는 제 데뷔작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 노미네이트 되었다는 소식에 진짜 좋아하셨어요. 온 가족이 저를 자랑스러워했고, 모두들 정말 좋아하셨어요."

▶영화를 보면 마치 오래된 레코드판을 꺼내서 듣는 것처럼 따뜻한 느낌이 드는데, 영화적 장치를 통한 효과인가요.

"35㎜ 필름 카메라로 촬영을 했기 때문이에요. 필름카메라로 영화를 찍는 것 자체가 향수를 느낄 수 있는 과정이었어요. 한국에서는 이제 더 이상 필름카메라로 영화를 촬영하지 않기 때문에 매일 밤 촬영한 필름상자를 뉴욕으로 보내는 작업을 거쳤어요. 통관과정서 엑스레이가 통과하면 촬영한 내용이 다 날아갈 수 있기 때문에 촬영 기간 내내 노심초사했던 기억이 납니다. 또 일반 카메라보다 더 많은 돈이 들기 때문에 NG가 날 때마다 가슴을 쓸어내렸죠. 오죽하면 필름이 자르륵 돌아가는 소리를 돈 떨어지는 소리라고 이야기했을까요."(웃음)

▶영화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도 꽤 컸다고 보이는데요.

"음악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이 있었어요. 저는 시간이 특정되지 않는 음악을 쓰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영화의 시점 자체가 어떤 시대로 특정되지 않았기 때문이죠."

▶남자 주인공인 유태오 배우의 연기에 대한 호평이 많은데, 캐스팅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준다면.

"솔직히 얘기하면 오디션을 해준 분들이 300명 정도였는데, 그중에서 30명을 불러서 2차 오디션을 진행했습니다. 그중에 유태오 배우가 있었어요. 제가 찾는 주인공의 이미지는 얼굴에 어린아이랑 어른이 공존해야 했기에 그를 선택했습니다."

▶가수 장기하가 남자 주인공의 친구로 등장하는 신이 있는데, 그가 출연하게 된 것도 궁금하네요.

"사실은 장기하 가수가 남자 주인공 역할에 오디션 신청을 했는데, 선정이 되지 않았어요. 제가 장기하 가수에게 친구역할을 할 수 있을지 물었는데, 흔쾌히 참여해주셨어요. 그의 캐릭터가 살아난 멋진 장면이 만들어진 듯하네요."

▶올 아카데미에서 '오펜하이머'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과 작품상 경쟁을 하게 됐는데 소감은.

"정말 영광이에요. 사실 지난해 선댄스영화제에 초청받은 것부터 이번에 오스카에 오르기까지 저는 영화 한 편으로 겪을 수 있는 모든 일을 겪은 것 같아요. 수상 여부를 떠나 데뷔작으로 오스카까지 갈 수 있었던 것은 진짜 신나는 일입니다. 지난 1년을 수업기간이라고 생각하고, 저는 진짜 많은 배움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번 영화는 한국의 CJ ENM과 미국 A24가 공동으로 배급을 맡았는데, 북미권에서 웰메이드 스튜디오로 정평이 난 A24와의 작업은 어떠했는지.

"A24는 데뷔를 앞둔 신예작가들이 마음껏 작업할 수 있도록 적극 도와주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신예감독이어서 리스크가 크지만 스튜디오는 감독을 적극 서포트 해 줍니다. 제가 시나리오를 가지고 갔을 때 흔쾌히 영화화를 결정하고, 직접 감독을 맡을 수 있도록 도와줬습니다. 스튜디오 관계자들은 제 시나리오를 읽고 눈물을 흘리며 영화를 만들어보라고 했지요. 고마운 영화사를 만나 마음껏 작업을 펼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김은경기자 enigm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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