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로에서] 대구 경제계 '합의추대' 프레임서 탈피를

  • 최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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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3-13 06:54  |  수정 2024-03-13 08:47  |  발행일 2024-03-13 제26면
너무 조용한 대구상의 선거
경선투표 트라우마에 주눅
新산업·젊은 CEO 등장 등
지역 기업 지형도에 큰 변화
경쟁없는 조직엔 미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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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경 기자

이상하리만치 조용하다. 요즘 대구상공회의소 차기 회장 선거 분위기가 그렇다. 회장을 선출하는 임시총회는 채 일주일도 남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대구를 대표하는 경제단체 수장이 누가 될지는 지역의 큰 관심사다. 대한상의 부회장도 겸하기 때문에 그 무게감이 결코 가볍지 않다. 더욱이 경기불안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이른바 '다중 위기' 속에서 공존 해법을 찾을 새 리더십에 대한 기대감도 있다. 2명이 회장 선거 출사표를 던졌지만 적극 나서지 않고 눈치만 본다.

왜 그럴까. 일찌감치 '단일후보 합의추대'라는 프레임에 가둬놔서다. 경선을 하면 마치 난리가 날 것 같은 분위기를 형성해놓은 것. '경선'이란 말은 사실상 금기어(禁忌語)에 가깝다. 다른 지역 상의선거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특정 후보자 지지선언도 없다. 아마 지금도 2명 후보자를 대상으로 물밑 설득작업이 한창일 것이다.

그 원인을 찾으려면 2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2000년 4월 제17대 회장 선거 때 채병하(전 대하통상 회장)·권성기(전 태왕그룹 회장) 후보가 상의회장 자리를 놓고 제대로 붙었다. 16대에 이어 리턴매치였다. 선거구도는 치열했다. 두 후보는 경선 때 자신에게 든든한 우군이 되어줄 기업인을 상공의원으로 대거 가입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결국 사달이 났다. 기업인들이 패가 갈려 상대편을 힐난했다. 채 회장(16대 회장)이 또 수장에 올랐지만 반목과 갈등의 정도는 치유불능상태였다. 채 회장은 새 임기(3년)를 시작한 지 8개월만인 2000년 12월 말 자진 하차했다. 사업장 부도, 대구시와의 불화도 있지만 역시나 경선을 치르면서 불거진 기업인 간 갈등이 뼈아팠다. 이 일은 지금도 큰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이후부터 대구상의 회장 선거에선 오롯이 '단일후보 합의추대'만 허락됐다. 갈등이 잉태될 여지를 원천차단하고 조용히 선거를 치르는 게 '아름다운 전통'처럼 인식됐다.

이제 '묻지마 합의추대' 방식에 태클을 걸 때가 왔다.

기업 환경이 많이 바뀌었다. 당시 '정치적 부대낌'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섬유와 건설 등 전통업종도 지금은 많지 않다. 2차전지, 반도체, 디지털헬스케어, 로봇, UAM 등 신산업이 승승장구하면서 경제지형도가 바뀌었다. 고학력과 합리적 사고가 통하는 2세, 3세 경영인이 많아졌다. 제조업에는 인공지능(AI)을 접목한 시도가 대세로 자리잡았다. 고금리, 공급망 불안 등 대내외적 악재 속에도 대구지역 투자는 늘고 있다. 민선 8기 출범 후 20개월 만에 대구 투자액 규모는 8조원을 넘어섰다. 이 기세가 꺾이지 않아야 한다. 대구 시민은 여전히 '경제적 허기'를 느낀다. 미래지향적인 마인드가 확보되면서도 생산적이고 행동하는 기업인들의 등장을 학수고대한다. 대구상의 회장이 길라잡이가 될 수 있다. 그러려면 새 경제리더를 제대로 뽑도록 선택의 장(場)이 열려야 한다. 정책 비전 제시는 당연히 해야 하고, 업종의 지역 대표성, 수출 및 연구개발 활성화 의지, 양질의 일자리 창출, 대구시와의 공조 의지 등 따져볼 게 많다. 하나같이 지역 기업인과의 공감대가 형성돼야 할 부분이다. 합의추대만이 능사는 아니다. 바뀐 기업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무탈만 내세우다 보면 미래는 없다. 경쟁 없는 조직은 도태되기 십상이다.
최수경 정경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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