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일 칼럼] 한동훈이 말한 볼테르

  • 박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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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4-01 07:07  |  수정 2024-04-02 13:46  |  발행일 2024-04-01 제22면
현란한 언어, 신예 한동훈
'상식은 일반적이지 않다'
볼테르의 경구를 인용
'셰셰'라면 '옛설'도 가능
누가 상식적인가 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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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일 논설실장

개인적으로 신인이 커가는 것을 즐기는 취향이 있다. 특히 스포츠나 정치분야다. 박찬호나 손흥민도 그런 케이스다. 그들이 10대 때 저 친구들은 언젠가 큰일 치를 거라며 스포츠 단신 기사까지 챙겨봤다. 더불어민주당에는 조금 미안한 얘기지만 이번 4·10총선 전체를 놓고 '출중한 정치 신예'를 고르라면 아무래도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자 총괄선대위원장일 게다. 신인에 대한 호기심이 큰 나의 취향임을 양해했으면 한다.

한동훈은 이미 법무부 장관 재직 시 국회 문답에서 보여준 특유의 화법과 언어들로 그가 일개 장관의 영역을 넘는 인물이란 걸 증명했다. 프로 정치세계에 입문한 지 3개월도 안 된 신인인데 등판하자마자 신인상은 물론이고, MVP라 할 차기 지도자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겨루는 수준이 됐다. 이재명이 누구인가. 지난 대선에서 0.7% 차이로 낙선한 대한민국 정치 넘버 2가 아닌가.

한동훈의 빠른 말투에 난감해하는 이들도 있다. 그의 말은 사실 현란하다. 그래도 호불호를 떠나 기억할 어구들이 많다. '산업화의 밥을 먹고, 민주화의 시를 배우며 성장했다.' '누가 대구에 매몰되지 말라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대구는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의 기둥이다.' 전국 팔도를 돌며 이토록 각 지역을 열렬히 진단한 정치인은 별로 기억되지 않는다. 그가 연구대상인 점은 또 있다. 조금 어려운 주제를 던진다. '우리는 공공선을 생각한다. 동료시민에 대한 계산없는 선의를….' '수많은 이슈 모두에 중간 지점의 생각을 가진 사람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며칠 전 한 일간지에 실린 한동훈의 인터뷰는 더욱 생각에 잠길 만했다. 그는 철학자 볼테르를 인용했다. '상식(common sense)은 일반적(common)이지 않다'는 경구다. 난 볼테르를 잘 모르지만 그 인용은 지금 이 시점 대한민국의 고민을 다 털어놓은 듯하다. 내가 상식이라고 믿어도 대중은 상식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현실이다. 한동훈은 어쩌면 이재명 대표의 '중국에 그냥 셰셰(謝謝)하면 된다. 왜 집적거리나'는 발언을 염두에 뒀는지도 모르겠다. '이재명식 셰셰'라면 우리는 미국에도 그냥 '옛설(Yes sir) 생큐'라고 반복하면 된다. 외교를 조금이라도 아는 이들이라면 그게 자칫 나라 망조를 재촉하는 비상식임을 안다. 그런데도 유권자 반응은 심드렁하다. 오히려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 받고도 곧장 창당하고 국회의원을 예약한 이들에게 열광한다. 상식은 진정 일반적이지 않은가. 진중권 평론가가 라디오 생방송 도중 방송 못 하겠다며 항의했다. 내용인즉 한동훈의 '개 같은 정치' 발언을 주제로 올리자 '이걸 여기서 따지자고? 맨날 막말한 사람은 그냥 넘어가고 어쩌다 한번 한 발언만 꼭 집어 공격한다면 그건 옳지 않다'고 공박했다. 편파방송에 대한 울분이다.

한동훈은 9회 말 투아웃에 등판한다고 스스로 규정했지만 알고 보니 그는 지금 선발투수이자 마무리 투수가 됐다. 정치 평론가들은 그 점이 국민의힘의 패배를 불러올지 모른다고 한다. 한동훈은 물론 지도자가 상식이라 고집할 때도 대중이 그렇지 않다면 대중이 옳을 때가 있다며 한발 물러섰다. 그렇다면 대중은 늘 상식적인가란 의문은 남는다. 만약 이번 선거에서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면 그 후과는 어떻게 될까.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는가란 의문이 엄습한다. 어느 쪽이 상식적인가? 난 한동훈이 굉장히 상식적 언어들을 구사한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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