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윤 칼럼] 어떤 갈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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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7-12  |  수정 2024-07-12 07:02  |  발행일 2024-07-12 제31면

[이재윤 칼럼] 어떤 갈망
이재윤 논설위원

넷플릭스 시리즈 '돌풍'이 7월 2주 차 주간 통합 콘텐츠 랭킹 1위에 올랐다. 공개 2주 만이다. 이유가 있다. 드라마에 작금의 우리 정치가 보인다. 배경 설정과 소재가 현실 정치와 무관치 않고 배역마다 실제 인물이 연상된다. 드라마인 듯 다큐멘터리인 듯하다. 부패한 거대권력을 뿌리째 뽑고 싶은 대통령 박동호(설경구 扮)와 그에 맞선 국무총리 정수진(김희애 扮)의 사투가 숨 막힌다. 한때 인권변호사였으나 부패 재벌과 손잡은 대통령과 그 뒤를 이은 운동권·검사 출신 대통령. 전대협 출신이지만 재벌과 결탁한 총리 부부. 강직한 검사와 정치 검사, 공안검사 출신 보수 정당 일인자. 이들을 돈으로 쥐락펴락하는 족벌 재벌. 낯설지 않다. 드라마나 현실이나 이들은 여전히 우리 정치의 실력자다. 드라마 속 명대사가 현재형으로 느껴지는 이유다.

현실은 드라마 못지않다. 이재명과 검찰, 검사 출신 대통령과 그 일가, 한동훈과의 갈등과 대결이 점입가경이다. 민주당은 기어코 검사 4인을 탄핵할 참이다. '검찰청 폐지'까지 밀어붙일 태세다. 누구는 3년째 털고 누구는 3년째 소환조차 안 하니 분명 이유 있는 항변이다. 그러나 분노의 복수심은 늘 정상적 판단을 가로막는다. 검찰은 이재명 부부 소환으로 맞대응했다. 러시안룰렛 게임처럼 한쪽이 죽어야 끝나는 싸움을 건 거다. "선을 넘은 자에게는 한계가 없다."(설경구) 무모한 용기다. "용기는 두려움에서 나온다. 저 자가 힘을 가지면 난 끝이라는 두려움."(김희애), "살아있는 권력도 엄정히 수사하라, 성역 없이 파헤쳐라, 그렇게 말한 놈이 성역"(전배수)인 건 드라마나 현실이나 같다.

대통령은 15번째 거부권을 행사했다. '채 상병 특검법'의 여론은 대통령에게 불리하다. 영부인만 보이는 여당 전당대회는 해괴하다. 민주당은 대통령 탄핵도 시작했다. 장외로 나설 태세이다. 장외 싸움은 파국의 전조다. "공정한 나라, 정의로운 세상, 이 땅을 천국으로 만들겠다고 약속한 자들이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고 있다."(설경구) 그래서 "미래를 약속하는 자들을 믿지 마라. 어떤 미래가 오든 자신이 주인이 되려 하는 자"라 경고했던가. "사람은 다 그렇다. 자기가 가진 장점 때문에 몰락한다."(김희애) 어리석은 자들은 어리석음을 좋아하고 거만한 자들은 거만을 기뻐한다.

드라마 속 주인공 모두 죽거나 감옥에 가거나 망했다. 현실의 벽에 가로막힌 대통령은 부패 세력을 끌어안고 절벽에서 뛰어내림으로써 그의 소명을 다했다. 이 승자 없는 비극이, 가슴 저민 'Sad Ending(슬픈 결말)'이 실은 역사 발전의 일보였다는 역설적 메시지가 읽힌다. 꿈도 희망도 없는 'Bad Ending(나쁜 결말)'과는 다르다. "세상의 오물과 함께 침몰한다면 당신의 몰락, 조금은 가치 있지 않을까."(설경구),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나의 시대가 오면 나는 없을 것 같다"는 노무현의 말을 차입한 듯한 대통령 박동호의 대사가 비감하다. 작가 박경수는 드라마를 시작한 이유를 '갈망' 때문이라 했다. 어떤 갈망일까. 그는 "현실을 리셋하고 싶었다"고 했다. "21세기 대한민국이 불합리하다"는 뜻이다.

그래, 부디 끝까지 싸워라. 멈추지 말고. 그리고 손잡고 함께 가거라. 역사의 뒤안길로. 모두 패자가 되어라. 오늘의 주인공 중 누구도 미래의 승자로 남겨둬선 안 된다. 완전한 리셋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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