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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실장 |
오래전 미국에서의 경험이 떠오른다. 2004년 현지 연수 시절인데 미국인들은 정치에 참 열성적이라고 느꼈다. 대통령 선거 시즌, 마치 우리의 국경일 태극기처럼 집집마다 지지 팻말을 내걸었다. '부시(공화당)에게 투표를' '존 케리(민주당)와 희망을'. 승용차에 후보 얼굴도 부착해 달린다. 이런 예도 접했다. 오하이오주(州) 클리블랜드의 유력 지방신문인 플레인딜러가 하루는 1면 사고(社告)를 냈다. "편집국 간부들이 투표를 했다. 조지 부시 8표 대(對) 존 케리 8표. 따라서 플레인딜러는 이번 대선만큼은 특정 후보 지지를 공식화하지 않겠다." 신기했다. 하긴 한국처럼 뒤로 밀면서, 겉으로는 중립인 척하느니 차라리 솔직한 민주주의이다.
많은 국내 평론가들이 인용해 이젠 식상한 듯하지만, 2018년 하버드 대학의 레비츠키와 지블랫 두 교수가 출간한 'How Democracies Die'(민주주의는 어떻게 죽어가는가)란 책은 사실 트럼프 때문에 저술됐다. 트럼프는 2016년 대선에서 승리한 후 과거 대통령은 상상못할 발언과 행동으로 주목받았다. 사법부 조롱, 극단의 미국 중심주의, 총기 옹호, 경쟁자에 대한 비하로 얼룩졌다. 자신을 반대하는 언론을 아예 적(enemy)으로 불렀다. 주한미군 철수, 방위비 10배 인상 협박은 그의 돌출 발언 중대목록에 들어가지 못한다. 두 교수는 트럼프가 민주주의 원칙을 위협한다고 규정했다. 트럼프의 등장속에 미국 민주주의는 비실비실 힘을 잃어 가고 있고, 이는 권위주의 정권이 들어선 중국, 터키, 러시아 같은 나라를 닮아간다고 했다. 그 예견은 들어맞았다. 2021년 1월6일, 미 의사당 폭력 사태는 충격이었다. 트럼프 강성 지지자들이 민주당의 바이든 승리에 승복할 수 없다며 난입해 벌인 전대미문의 폭거였다. 쿠데타의 후진국도 아닌 민주주의의 나라 미국이 흔들린 역사적 장면이었다. 트럼프는 폭력을 옹호했다. 탄핵까지 거론됐다.
세계는 일찌감치 증오와 혐오의 정치시대로 접어들었다. 유튜버 같은 제3미디어는 확증편향, 아는 것만 알고 믿는 것만 보라고 부추긴다. 미국도 예외는 아니다. 정권 교체의 플랫폼이던 미국식 양당 정치는 양극화로 변질됐다. 점잖은 중산층의 지지 팻말은 거리로 뛰쳐 나왔다. 양측 지지자들은 노상에서 서로 저주를 퍼붓는다. 언론사는 고민스러운 편집국 투표의 시대를 접고, 진영의 칼날을 세운다. 기자는 심판관을 넘어 경기장에 난입한다.
모든 걸 한방에 날려 버렸다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걸 게다. 오른쪽 귀에 큼직한 반창고를 붙인 트럼프가 지난 18일 공화당 전당대회 대통령 후보 수락연설에 나섰다. 그는 득의만만했다. 특유의 독설은 줄이고, 분열을 치유하자고 했다. '미국을 위대하게'를 뒤로하고 '미국을 하나로'를 외쳤다. 저격 사건 이후 모든 게 바뀌었다. 시민들은 인터뷰에서 한결같이 답한다. "신(god)이 트럼프를 다시 한번 쓰게 하려나 보네요." 트럼프도 신의 덕으로 내가 인생을 덤으로 살게됐다고 한다. 반전은 민주당으로 비화됐다. 바이든의 후보 사퇴가 초읽기에 몰렸다는 뉴스가 들려온다. 나는 이 대목에서 '역설'을 느낀다. '총알 한방'으로 모든 혼돈이 정리되고, 후보자는 신의 선택을 받는다? 그렇다면 새로운 저격수의 등장은 다시 모든 걸 뒤엎을 수 있는가. 아메리칸 드림, 민주주의의 꽃이던 미국 정치의 풍파가 너무 극적이다. 미국식 민주주의는 진짜 죽어가는가.논설실장

박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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