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에게 희망을] 뇌성마비 앓는 현아…생후 38일만에 고열 앓은 뒤 뇌성장 멈춰

  • 권혁준,박지현
  • |
  • 입력 2024-08-21  |  수정 2024-08-21 08:46  |  발행일 2024-08-21 제10면
인지기능 거의 없고 시각 장애

수두증·경련 등에 입퇴원 반복

산정특례 적용 안돼 '복지사각'
[어린이에게 희망을] 뇌성마비 앓는 현아…생후 38일만에 고열 앓은 뒤 뇌성장 멈춰
대구 북구 칠곡경북대병원에서 뇌병변 장애를 앓고 있는 현아(여·6·가명)가 웃음짓고 있다. 박지현기자 lozpjh@yeongnam.com
현아(여·6·가명)의 기억은 생후 한 달 정도에 머물러 있다. 몸은 성장하고 있지만, 생후 38일쯤 원인 모를 고열로 인해 이후 뇌의 성장은 멈췄다. 뇌 손상이 심해 시각은 물론이고 인지기능도 거의 없는 상태다. 병원에선 상세 불명의 뇌성마비, 난치성 뇌전증을 동반한 상세 불명의 뇌전증, 감염 후 수두증이란 진단을 내렸다.

◆생후 38일 후 고열 앓고 뇌 손상

2018년생인 현아는 여느 아이들과 다름없이 건강하게 태어났다. 하지만, 생후 38일 차에 원인을 알 수 없는 고열로 응급실을 찾았고, 세균성 뇌수막염과 원인 불명의 패혈증, 수두증 진단을 받았다. 이후 3개월간 집중치료실에서 치료를 받았고, 지금까지 대학병원을 방문하며 치료 중이다.

현재 현아는 뇌가 위축돼 일부만 남아 있는 상태다. 시각을 담당하는 후두엽 손상으로 시각 장애를 얻었고, 인지 기능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해 24시간 누워 생활한다.

현아는 수두증으로 인해 션트(뇌실 복강 간 단락술) 수술을 받았으며, 뇌 기능이 제한적이어서 갑상선 저하증, 요붕증, 원인 모를 경련으로 주기적으로 병원 입·퇴원을 반복하고 있다. 또, 코로나19에 2차례 감염된 후 자율신경계 문제로 체온 조절 기능이 저하돼 여름철 에어컨 바람에도 과도한 심박 저하 위험이 있어 바깥 활동이 불가능하다.

현아 엄마는 "여름에도 에어컨을 켜지 못하고 겨울엔 방이 지글지글 끓을 정도로 보일러를 켜야 체온을 유지할 수 있다. 여름철엔 바깥은 덥지만 가게나 병원 등 모든 곳에서 에어컨을 가동하기 때문에 오히려 나가는 데 어려움이 많다"고 토로했다.

◆산정특례 미적용, 실질적 6인 가구… 복지 사각지대 놓여

현아의 상태는 중증 희귀 질환과 비슷하지만 산정특례 적용 대상은 아니다. 현아 엄마는 "희귀질환자로 확진 받으면 산정특례 대상이 되는데, 우리 아이는 희귀 질환 진단을 받지 못했다. 증상은 분명히 중증이지만, 세균성 뇌수막염 진단을 받을 때 GBS균이 원인으로 명확하게 나왔기 때문"이라며 "산정특례 대상만 돼도 한결 나을 텐데 병원비 감면을 받지 못해 어려움이 많다"고 하소연했다.

생계는 오롯이 아빠의 몫이다. 교직원으로 근무하면서 근로소득을 얻고 있지만 병원비와 치료비, 기타 소모품 등을 감당하기엔 벅차다. 현아는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 누워 있거나 엄마와 외할머니에게 안겨 생활하는데, 의료용이 아닌 일반 침대에서 생활해 욕창 발생 위험성이 아주 높다. 또한, 현아가 성장함에 따라 특수 휠체어 등이 필요하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아 현아 부모님의 부담이 큰 상황이다.

게다가 외할머니와 외증조할머니까지 함께 사는 실질적 6인 가구여서 아빠의 외벌이만으로는 생계유지도 힘에 부치는 상황이다. 그러나 주민등록상으로 아빠·엄마·현아·현아 동생까지 4인 가구이기 때문에 6인 가구에 대한 수급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현아 엄마는 "여태껏 장애인 주차 말고는 돌봄이나 다른 지원을 받아 본 적이 없다. 병원이나 복지관에 붙어 있는 포스터를 보고 여러 번 지원 신청을 해봤는데, 선정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더 아픈 아이들이 선정된 것이기에 괜찮았다. 하지만 지원 사업을 받기 위해 사례 신청 때 지금의 아픔이 더 아프게, 자극적이게 보여야 한다는 것에 가슴이 미어지고 아이에게도 너무 미안했다"고 눈물을 보였다.

◆오래오래 함께 있고 싶은 마음뿐

현아네는 최근 건강 상태가 나빠진 현아가 조금이나마 회복해 오랫동안 함께 하는 꿈을 품고 있다. 날씨가 좋은 날엔 바람도 쐬는 소소한 일상이 가능해지길 소망한다.

현아 엄마는 "예전에는 막연하게 가족 모두가 제주도에 가는 것을 소원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비행기를 탈 수 없다고 해서 배로 가는 방법도 알아보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이게 너무 희망 고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자꾸 아프고, 더 이상의 방법 없이 앞으로 나빠지지 않도록 하는 약만 복용해야 하는 상황이 되니 안 아프더라면 뭘 해볼까 하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면서 "지금은 어떠한 형태로든 그냥 같이 오래오래 있고 싶은 게 꿈"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말 이뤄질 수만 있다면 미국에서 현아와 살아보고 싶다. 사람들의 인식이 많이 개선됐다고는 하지만 아직 우리나라는 장애인에 대한 시선이나 시설, 이용할 수 있는 공간 등이 부족하다. 아픈 사람도 보통 사람들과 같이 잘 누리고, 눈치 보지 않는 생활을 해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권혁준기자 hyeokjun@yeongnam.com

*심재성 3도 화상으로 중증 화상 장애 진단을 받은 정후(가명·영남일보 6월21일자 7면 보도)에게 영남일보 독자 분들이 총 241만원의 후원금을 보내주셨습니다.

후원금 모금 계좌 : 기업은행 035-100411-01-431 초록우산어린이재단

후원문의: 초록우산 대구지역본부 053-756-9799
기자 이미지

권혁준

기사 전체보기
기자 이미지

박지현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사회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