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윤 칼럼] '뉴라이트' 이해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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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8-23  |  수정 2024-08-23 08:36  |  발행일 2024-08-23 제27면

[이재윤 칼럼] 뉴라이트 이해하기
이재윤 논설위원

두 권의 책을 찾고자 했다. 하나는 30여 년 전 읽었던 장을병의 '정치의 패러독스', 또 하나는 지난 광복절을 기해 서점에 배부된 정안기의 '테러리스트 김구'이다. 집안 곳곳 흩어진 책더미 속에서 간신히 발견한 '정치의 패러독스'는 누렇게 퇴색해 겉장은 떨어지기 직전이었다. '테러리스트 김구' 찾기는 실패했다. 교보문고의 재고가 바닥났다. 17일 입고했다는데 하루 만에 매진이다. '두 쪽 난 광복절' 이슈가 서점가를 덮친 듯하다. 저자의 인터뷰 동영상과 서평을 개관하는 것으로 책 읽기를 대신했다. 두 책을 갑자기 찾은 이유는 최근의 화두 '뉴라이트'를 설명하는 유용한 도구가 되리란 막연한 생각에서다. '혁명은 구질서의 단절이나 새로운 세계의 탄생이 아니라 순환, 회귀, 기존 질서에로의 복귀를 의미한다'는 장을병의 주장이 30여 년이 지나 부지불식간에 떠올랐다. 혁명의 복고성(復古性). 가히 역설이다.

소련 해체 등 80년대 말 세계사적 변동은 한국에도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를 불러왔다. 당시 권위주의 체제 아래 사회주의적 전망으로 사회운동을 벌인 그룹이 있었고, 이들 사이 한국 사회 성격을 둘러싼 논쟁이 벌어졌다. 소위 '사구체 논쟁'이다. 변천을 거듭했지만,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 vs 식민지 반봉건사회로 요약된다. 전자를 PD, 후자를 NL이라 통칭했다. 소련 붕괴는 PD에 사상적 치명타를 가했다. PD 상당수는 그때 사회주의를 버렸다. 주체사상을 받아들인 NL은 오랫동안 친북적 태도를 견지하다 97년 황장엽의 망명으로 결정타를 맞았다. 그가 말했다. "주체사상은 김일성 사상이 아니다. 내가 만든 사상이다." 이때 수많은 주사파 인사들이 전향한다. PD의 회심이나 NL의 전향은 다행이고 양심적 지식인의 당연한 귀결이다. 그런데 이후 '뉴라이트'라 자칭한 이들은 '반성'에 머물지 않고 한국 사회를 다시 새롭게 주도하려 했다. 전향의 정당성을 얻고자 하는 욕구가 지나쳤던 탓에 극과 극을 넘나든 과도한 역주행이 반동(反動)적 행태로 표출됐다.

역사관부터 이질적이다. '조선 근대적 발전 불가론'. 조선 후기 자본주의의 맹아가 싹 텄다는 역사학계의 입장과 상치된다. '식민지 근대화론'도 마찬가지다. 그럼 미국의 핵폭탄 투하로 일본이 천황제에서 민주주의 국가로 바뀌었다는 논리도 타당하냐는 반박을 당장 받는다. 더 특이한 게 있다. 지금 남과 북이 국력에서 차이 나는 이유의 하나로 '남한에 온존했던 친일파 세력'을 든다. 누군가 전한 뉴라이트의 사상적 스승 안병직의 말은 구체적이다. "김구가 한 게 뭐 있어. 폭탄이나 만들고 젊은 애들 던지게 하고, 그렇게 해서 독립이 됐나. 실제 이 땅에 공장 만들고 신문사 짓고 학교 세우고 전부 친일파잖아. 이 사람들이 우리 역사에 진짜 이바지한 사람들이야."

"김구가 한 게 뭔가?" 한때 혁명을 꿈꾸던 이들이 전향해 던진 도발적 질문에서 혁명의 패러독스, 회귀와 반동, 그 역설의 쓴맛을 본다. 장을병이 말한 혁명의 마지막 3단계 '테르미도르 반동'은 작금 '뉴라이트 전성시대'를 유사하게 설파한다. 참신했던 혁명의 이념은 퇴색하고 첫 단계의 혁명 과정에서 축출당한 구체제의 잔당들이 대사(大赦)를 받아 복귀하는 반면 처음의 혁명 세력이 박해받는다.

잘못된 역사관은 역사만 왜곡하는 게 아니다. 현실도 왜곡한다. 뉴라이트의 역사 쿠데타가 성공하면 우리 자녀들이 김구, 안중근을 테러리스트로 배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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