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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실장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선거법 1심 재판의 충격이 크다. 징역형이다. 정치권의 반응은 극명하다. '사법 정의를 세웠다. 재판부를 존경한다'에서부터 '정적( 政敵)제거에 부역한 미친 판결'까지 극단을 달린다. 우리는 이처럼 같은 사안을 놓고 심히 다르게 인식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정치권만 그런 게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끝장토론이라며 기자회견을 한 다음 날, 국내 조간신문의 사설은 그 격차에서 흥미롭다. '윤 대통령, 크게 바꿔 크게 얻기를 바란다' '이런 대통령 처음 봤다. 이제 더 이상 기대가 없다'. 다시 비틀어 물어보자. 우리는 왜 똑 같은 사실(fact)를 놓고도 각자 정반대의 가치(value)를 부여하는가?
미 대선이 트럼프 승리로 끝나자 곳곳에서 이런 질문을 제기했다. '한국언론은 해리스가 이길 듯 보도했는데 결과는 왜 다른가' 미국언론의 보도를 쉽게 받아들인 탓이 크다. CNN, 뉴욕타임스 등 미 언론의 주축은 민주당 성향이다. 공화당의 트럼프가 기자회견장에서 당신들은 늘 '가짜뉴스만 생산한다'고 맹비난하는 배경이다. 윤 대통령 부부와 모종의 거래가 있었다고 의심받는 명태균이 검찰 수사를 받고 나오면서 기자들에게 던진 응수도 그랬다. 명씨는 몇몇 언론사를 향해 '당신들은 가짜뉴스'라고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구속된 명 씨의 혐의는 별개로 하고, 그간의 여러 뉴스 중 그의 주장처럼 가짜가 포함됐을 개연성을 우리는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된 한스 로슬링의 '팩트풀니스(factfulness·사실 충실성)'는 한국인을 포함한 세계인이 현실세계의 팩트(사실)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지를 실증 데이터로 입증했다. 예를 들면 '지난 20년간 세계 인구에서 극빈층 비율은 어떻게 바뀌었을까'란 질문의 정답률이 10%가 채 안된다. 정답은 '거의 절반으로 줄었다'인데, 대부분 나라 사람들은 '거의 2배로 늘었다', '거의 같다'로 답했다. 로슬링은 이를 놓고 사람들이 현실을 뒤틀리게 보는 부정본능, 남을 비판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비난본능이 내재한 때문이라고 했다. 흥미로운 대목은 그런 본능에서 기자들은 더 앞서간다는 지적이다. 기자들은 전쟁, 자연재해, 질병, 테러 등 부정적 현상에 집착한다. 세상은 나날이 좋아지고 있지만 기자들은 사람들의 공포본능을 자극하고, 일반화를 일삼고, 잘못된 통계를 인용하면서 가짜 뉴스를 자신도 모르게 생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우리는 왜 같은 사안을 놓고 정반대의 해석을 하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그 간극을 어떻게 메워야 하는가. 로슬링은 '팩트풀'을 역설한다. 사실(fact)은 가치(value)와 대척에 있는 개념이다. 나의 주관인 가치가 사실을 먼저 장악한다면 그때부터 혼선이 생긴다. 누군가에 집착해 누적적으로 사실을 외면한다면 나의 인식과 가치는 허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재명 재판의 판결 요지를 읽어보고 느낀 부분도 그렇다. 나의 가치판단은 사실 파악 그다음 단계여야 한다. 집착이 집단적 진영 현상이라면 더 심각하다. 나의 진영이 권력을 쟁취해야 한다는 당위, 즉 가치가 사실을 덮을 때 나라는 가짜와 허위의식의 폭풍 속에 불행해질 수 있다. 언론마저 그 진영에 휩쓸린다면 가짜는 가속도를 달린다. 거짓은 민의를 왜곡한다고 판사는 적시했다. 당연한 명제이지만 폐부를 찌르는 지적이다. 판사는 지금 우리에게 '사실에 보다 충실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논설실장

박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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