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설]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전진해야 한다

  • 박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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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12-05  |  수정 2024-12-05 11:48  |  발행일 2024-12-05 제1면
[직설]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전진해야 한다
4일 오후 대구 중구 CGV한일극장 앞에서 열린 윤석열 퇴진 대구시민시국대회에서 참가자들이 휴대폰 손전등을 켜고 윤석열 대통령 퇴진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윤호기자 yoonhohi@yeongnam.com
충격적인 사태 진전이다. 군대와 물리력을 동원한 정치 쿠데타는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21세기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에서 비상계엄 발동이란 엄중한 사건이 6시간 동안 펼쳐졌다. 영화보다 더 긴박한 12월의 긴 밤을 보낸 국민은 착잡함과 자괴, 혹은 분노로 대한민국호(號)의 갈 길을 우려하게 됐다.

먼저 의문이 엄습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왜 이 시기에 비상계엄이란 극약 처방을 국민 앞에 선보였는가. 계엄이란 물리성이 여의도 정치에 작동할 수 있다고 믿었던가. 아니면 다른 복선의 정치적 의도가 있었던가.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수석최고위원이 지난 8월 윤석열 정권의 계엄준비설 의혹을 제기할 때만 해도 실현 가능성을 믿은 이는 거의 없었다. 대통령 고유권한인 군대 동원의 개연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야당의 전략 전술 정도로 인식했다. 심지어 이번 계엄을 건의했다고 알려진 김용현 국방부 장관도 앞서 계엄 의혹에 대한 질문을 받고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설사 발동한다 하더라도 어느 국민이 그걸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고 선을 그은 바 있다.

실제로 6시간의 상황을 지켜본 바도 계엄의 물리성에서 준비 부족이 역력했다. 국회의원들은 국회 현장 상황을 전하며 "군과 경찰의 적극적 지지가 있었다고 보기 힘들었다"고 전했다. 40여 년 전 12·12 군사쿠데타 상황에서 투입된 군대 같은 결기는 고사하고, 계엄 명령의 하부 침투도 뜻대로 되기 힘든 정황이었다. 돌이켜보면 이건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일정 궤도에 올랐다는 측면에서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겠다.

이번 '12·3 비상계엄'은 이른바 친위 쿠테타 형식으로 좁혀 해석할 수도 있다. 흔히 제3세계 권위주의 독재정권이 위기 앞에서 스스로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군대와 경찰을 비상하게 동원하는 방식이다. 외견상 이도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지지율의 극심한 하락 속에 배우자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누적된 리스크로 위기에 몰렸다. 윤 대통령은 지난 달 기자회견에서 김 여사 문제를 사과하면서도 "제 아내를 악마화시켰다"고 심정을 토로했다. 여기다 명태균 스캔들의 예측 불가성까지 가세했다. 대통령의 이성적 판단 부재와 이번 계엄 발동을 연계하는 이들에게서 제기되는 상황 논리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윤 대통령이 김 여사 리스크와 비상계엄을 연계했다는 것은 국민적 납득을 구할 수도 없고 사실상 어처구니없는 시도이다.

더 좁게 친위 쿠데타적 성격으로 본다면 윤 대통령으로서는 비상계엄을 통해 스스로 국민 앞에 일종의 정치적 카드를 던졌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이성적 판단을 했다는 전제 하에 '대(對)국민 정치 소통 방식'으로 물리적 동원을 통한 이목 집중을 선택했다는 추측이다. 정치적 복선의 메시지 전달이다. 계엄 명분을 최대한 호의적으로 해석한다는 전제 하에서다. 윤 대통령은 계엄 발동의 명분으로 "여의도 국회가 괴물이 되고 있다"고 규정했다. 입법 독주를 말한다. 윤 대통령은 "야당이 22건의 고위관료 탄핵 소추안을 발의했고, 이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유례가 없고 건국 이후에도 전혀 유례가 없다"고 상기시켰다. 야당의 입법 폭주와 행안부장관·방통위원장·감사원장·국방부장관 탄핵 시도로 행정부가 마비되고 있다는 항변이다. 사법부 겁박과 민주당의 예산 단독 통과 시도도 사례로 들었다. 헌정 질서를 야권 정치인들이 짓밟고 있다는 대통령의 인식이다. 나아가 윤 대통령은 어쩌면 대통령이 가진 비상계엄마저 국회가 무력화할 수 있다는 장면을 국민에게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이 같은 명분도 그 진정성을 최소한 이해한다 해도 국민여론의 뒷받침을 받아 성공하기에는 어려워 보인다.

문제는 향후 정국 추이와 합리적 민심의 형성 여부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 탄핵을 공식화했다. 대통령의 거취 결단에서부터 비상계엄의 위헌성, 2차 비상계엄 가능성, 탄핵 실현 여부까지 절박한 상황 전개가 불가피해졌다. 대통령 중심제 국가에서 대통령 권위의 완벽한 붕괴만큼 불행한 정치적 사건도 없다. 외신에서 "민주주의 국가, 한국의 평판을 훼손했다"는 지적은 뼈아픈 현실이 됐다.

21세기 대한민국은 산업화의 성공을 바탕으로 글로벌 민주국가에 진입해 있다. 그 작동을 멈출 수는 없다. 정치적 수습과 재건은 지혜로워야 한다. 대통령 참모와 각료의 전원 퇴진은 누가 위기를 관리해야 하는가란 질문을 던진다. 입법부 국회와 정책 결정의 라인에 위치한 책임있는 이들은 모두 한발씩 양보해 '민주주의 대한민국의 중단없는 진로'를 향해 사심을 버리고 혜안을 모아야 한다. 계엄 사건에 대한 대통령의 해명부터 있어야 한다. 6시간의 긴박한 상황이 헌법에 따라 종료됐듯이 남은 수습도 헌법과 법률의 존중과 복종만이 유일한 길이 돼야 한다. 박재일 논설실장 park11@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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