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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원식 국회의장이 지난 14일 국회 본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상정하고 있다. 연합뉴스 |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3일 오후 7시24분 대통령직에서 직무정지됐다.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찬성 204표(반대 85, 무효 8, 기권 3)로 가결된 데 따른 수순이다. 12·3 비상계엄사태는 일단 헌법과 법률의 테두리 속으로 봉합됐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12·3 이전으로 돌아간 것은 아니다. 외신의 전언대로 윤 대통령의 '도박(계엄 선포)'은 아시아의 역동적 민주주의 국가, 한국의 민주 시스템을 시험대에 올려놓았다. 앞으로 최소 5~6개월간 벌거 벗은 한국정치는 요동칠 수밖에 없다. 우리는 거리의 정치, 광장의 대결을 종식시킬 수 있을 것인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5일 기자회견을 통해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에 대한 정치적 공세, 즉 탄핵을 추진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한 총리는 비상계엄 선포 국무회의에 참석했다. 민주당은 건국 이래 가장 많은 장관·검사 탄핵에다 다수의 특별검사법안으로 윤 대통령을 압박해 왔다. 이 대표가 더 이상의 국정 혼선을 피한다는 취지로 한 총리 탄핵을 거두겠다고 표명한 것은 '절제'라는 최소한의 정치적 미덕으로 보인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15일 한덕수 권한대행과 통화했다. 바이든은 "한국의 민주주의를 신뢰한다"고 덕담했다. 앞서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에 대한 '사전 언질' '귀띔'이란 외교적 행동을 생략했다. 국가 간 사전 통보가 외교상 의무는 아니지만 동맹국이자 혈맹국인 미국을 무시한 행위는 국가관계에서 찜찜한 주홍글씨가 될 수 있다. 비상계엄 후 미국이 비교적 절제된 외교적 언어로 한국사태를 주시해 왔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이제 상당 기간 한국정치는 고통의 터널을 지나야 한다. 헌법재판소는 16일 첫 심판회의를 소집하면서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대한 심판작업에 돌입한다. 최대 180일의 시간이 주어졌지만 사안의 중대성과 시급성을 감안하면 2~3개월 내 결론 날 것이다. 핵심은 윤 대통령이 헌법과 법률에 주어진 대통령 권한을 넘어선 직권남용을 저질렀느냐와 비상계엄을 통한 내란죄 범죄 구성 요건에 부합하느냐 여부다. 직권남용은 명백해 보인다. 반면 내란은 사전적 의미와 법률적 개념에서 국민·법률가 간 일정 부분 괴리가 있어 보인다.
윤 대통령은 헌재 심리를 통해 계엄 발동의 정치적 의미를 밝히고 싸울 것이라고 했다. 그걸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동시에 윤 대통령에게도 이제 최소한의 절제가 요구되고 또 그렇게 해야 한다. 윤 대통령의 파국은 야당의 파상공세 이전에 객관성과 정서의 공감대를 바탕으로 한 '국민 설득'의 실패가 자리한다는 점을 스스로 유념해야 한다. 배우자 김건희씨에 대한 정치적 공격에 감정의 절제를 잃어버린 점도 자리했을 것이다.
비상계엄과 내란 혐의에 대한 수사는 가혹할 수밖에 없다. 군대를 동원해 민주주의를 정지시킨 죄는 당장의 형벌을 넘어 미래의 가능성까지 차단해야 한다는 숙제가 있다. 계엄 발동의 라인에 있던 군·경 수뇌부와 명령권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은 가슴 아프지만 당연하다. 다만 현장의 명령에서 국민을 떠올린 군인들의 고민까지 모조리 쓸어내릴 수는 없다. 12·3 사태는 민(民)의 정치가 군을 동원한 쿠데타 시도였다.
국군은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었다. 군대는 사기를 먹고 산다. 그 사기를 복원할 부담까지 우리는 떠안고 있다. 엄정함과 절제는 동전의 양면 같은 모순이지만, 대한민국의 진정한 'K민주주의 복원'을 염원한다면 모두 놓칠 수 없는 정치적 당위다. 세계는 지금 한국 민주주의 탄력성을 새삼 주목하고 있다. 가녀린 그 희망에 2025년 새해, 대한민국은 부합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박재일 논설실장 park11@yeongnam.com

박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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