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일 칼럼] 누가 '공포정치'의 진정한 유발자인가

  • 박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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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2-10  |  수정 2025-02-10 07:13  |  발행일 2025-02-10 제22면
혁명의 작용·반작용 법칙

12·3 계엄사태 묘한 반전

여야 지지 여론의 출렁임

두달전 상상하기 힘든 구도

국민의 공포는 어느쪽인가

[박재일 칼럼] 누가 공포정치의 진정한 유발자인가
논설실장

서양 정치사(史)의 빛나는 전환점의 하나는 1789년 발발한 프랑스 혁명이다. 자유 평등 박애의 정신을 탄생시켰고,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인간 최고의 정치 발명품인 민주주의 열차를 출발시켰다. 프랑스 혁명처럼 대변혁기에는 용수철 같은 반동(反動)이 있다. 작용·반작용의 물리학 법칙이 정치 영역에도 작동한다 할까. 혁명은 피비린내 나는 처단의 연속이었다. 변호사 출신으로 혁명 권력을 잡은 급진 '자코뱅파(派)'의 지도자 로베스피에르는 '독재가 미덕'이라고 주장했고, 반대파를 기요틴(단두대)에 올려 모두 죽여버렸다. 공포정치다. 그 반작용이 '테르미도르 반동'이었다. 온건파가 득세했다. 이제 로베스피에르의 차례다. 그가 단두대에 올랐고, 처형당했다.

12·3 계엄 사태 이후 한국 정치를 프랑스 혁명 과정에 비유할 수는 없겠지만, 정치적 격변의 파고를 넘고 있다는 측면에서 유사성이 발견된다. 윤석열 대통령의 한밤중 느닷없는 계엄은 군부통치 회귀의 두려움을 던졌다. 시간이 흐르면서 묘한 반전이 감지된다. 지난 8일 동대구역 광장에서 기독교 단체와 한국사 1타 강사로 유명한 전한길 씨가 주도한 탄핵반대 집회가 그런 유형이다. 대구에서 열린 정치집회로서는 역대급이었다. 각종 여론조사도 벽에 튕긴 공처럼 반사적이다. 윤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여야 정당 지지율도 급변했다. 집권 여당 국민의힘은 계엄 직후 여론조사에서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에 거의 더블스코어로 열세란 수치가 나왔는데 최근에는 표본오차 내에서 민주당을 앞선다는 조사마저 등장했다. 심지어 시중 서점에서는 우파 정치인 도태우 변호사의 저서가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군대를 동원한 공포정치의 서두는 윤석열 대통령이 꺼냈는데, 정작 그 공포는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인가. 작금의 여론 반전은 아마 윤 대통령 측이 주장하는 계엄의 배경과 관련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뭉뚱그려 보수층 지지자들도 계엄 자체를 찬성한다는 것은 아니더라도 계엄을 촉발하게 된 앞선 정치적 사건들에 대해서는 새삼 공포심을 갖는다는 추론이다. 압도적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윤석열 정권에 퍼부은 29번의 탄핵 발의는 대한민국 건국 이래 발의된 탄핵의 절반 이상이다. 윤 대통령 스스로 탄핵당한 것은 자업자득이라 쳐도, 대통령 권한대행 총리에다 그 이전 행안부장관, 감사원장, 방송통신위원장 심지어 야당 대표를 수사한 검사까지 탄핵당했다. 국회 탄핵으로 당사자의 직무는 즉각 박탈된다. 반작용은 야당의 탄핵 난사 때문만은 아니다. 어떤 분석가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보수 대통령 윤석열마저 탄핵당하도록 내버려 둘 수 없다는 회한의 감성도 있다고 한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사법 절차 지연, 계엄 이후 빚어진 공수처·경찰·검찰이 뒤엉킨 수사권 공(功) 다툼, 현직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도 가세했다.

혁명의 밀물과 썰물은 결국 권력 게임으로 정점을 찍는다. 행여 윤 대통령이 탄핵되면 60일 안에 치러야 할 대통령 선거로 그 에너지가 모아질 것이다. 이재명 대표는 대선 후보군에서 단순 여론 수치로 보면 압도적 1위이지만, 이게 끝이 아닐 모양이다. 보수 대(對) 진보, 우파 좌파의 1대 1 대결 여론조사는 표본오차내에 들어갔다는 수치가 등장한다. 불과 2개월 전에는 상상하기 힘든 구도다. '이재명 포비아(phobia)'란 생경한 말까지 생겨났다. 자꾸 궁금해진다. 누가 '공포정치( Reign of Terror)'의 진정한 유발자인가. 작금의 격변기를 훗날 한국정치사(史)는 어떻게 기록할까.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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