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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식 정치에디터 |
지난 8일 축구장 3개보다 넓다는 동대구역 광장이 꽉 찼다. 1969년 역사가 문을 연 이후 50여 년 동안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인 건 아마 처음일 게다. 주최 측 추산 15만명, 경찰 추산 5만2천명이라고 했다. 개의치 않는다. 높은 곳에서 찍은 항공 촬영물만 봐도 "와~"하는 탄성이 절로 난다. 언론은 이들을 '아스팔트 보수'라고 칭한다. 왜, 무엇 때문에 이 많은 사람들이 칼바람이 부는 영하의 혹한에도 광장에 모였나?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가 가장 주된 이유다. '폭주하는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가 싫은 것'도 발걸음을 재촉했다. 광장은 군중의 목소리를 분출했다. 충분히 지축을 흔들고도 남았다.
사람들은 처음엔 '가짜뉴스'인 줄로만 알았다. 곧바로 그게 아니라 '진짜 비상계엄'임을 알고 소스라쳤다. '군홧발' '통제' '검열'…, 공포가 엄습했지만 이도 잠시, 계엄은 6시간 만에 막을 내렸다. 그날 저녁 일찍 잠든 이들은 밤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몰랐다. 아침이 밝았다. 어찌 됐든 '계엄은 아니지 않나' '2024년 AI 시대에 웬 계엄이란 말인가' '계엄령까지 내릴 만큼 우리 사회에 무슨 일이 있었나?' 성난 민심은 윤석열 대통령을 향했다. 야당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탄핵 열차에 시동키를 꽂았다. 계엄 11일 만에 탄핵안을 통과시켰다. 헌정 사상 두 번째 대통령 탄핵이었다. 보수층은 얼굴을 들지 못했다. 탄핵 대통령 둘 다 보수가 배출했기 때문이다. 보수의 궤멸은 자명한 것처럼 보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그냥 주저앉지 않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 때와는 확연히 달랐다. 윤 대통령은 계엄의 정당성을 설파했다. 야당의 '줄 탄핵'과 '예산 폭거'를 이유로 들었다. 그는 법 전문가다. 헌재의 심판정에 직접 나와 증인 심문도 한다. 그를 돕는 '아스팔트 연사'도 나왔다. 한국사 '일타강사' 전한길씨다. 학원계에선 해당 과목에서 가장 강의를 잘하는 이를 일타강사로 부른다. 전씨는 '계엄령'이 아니라 '계몽령'이라고 한다. 그간 잘 몰랐는데,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으로 거대 야당의 폭주와 국정 마비 실체를 국민이 알게 됐다는 주장이다. 강의실을 사로잡은 특유의 호소력은 우파의 심금을 울렸다. 전씨의 연설을 듣기 위해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린다. 아스팔트 보수가 결집하는 원동력이 됐다. '여당 의원 108명보다 파괴력이 더 크다'는 평가도 나온다.
계엄은 분명 잘못됐다. 윤 대통령은 야당의 폭거에 대한 경고용이라고 했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 "실제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했지만, 구차한 변명에 불과하다. 그러면 모든 미수범은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인가. 민주당도 잘한 게 없다. 스물아홉 번의 탄핵 소추안은 어깃장으로밖에 볼 수 없다. 이재명 대표도 구차한 건 윤 대통령과 매한가지다. 자신의 선거법 위반 재판을 지연시키기 위해 온갖 수법을 가리지 않는다. 만약 조기 대선이 실시된다면, 대법원 확정 판결을 선거 이후로 미루기 위한 것이라는 건 삼척동자도 안다. 얄팍한 꼼수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국민 앞에 좀 진솔하게 처신하라. 그래도 일국의 대통령이고 거대 야당의 대표가 아닌가. 대통령답게 인정할 건 인정하고 잘못된 건 국민에게 사과하라. 이 대표도 '누구나 법 앞엔 평등하다'는 모습을 보여달라. 영화 대사가 생각난다. '가오가 있지 쪽팔리면 안되잖아'
진식 정치에디터
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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