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길형식 거리활동가 |
전쟁의 상처가 채 아물기 전인 1966년, 대구 도심 외곽의 변두리였던 내당동에 현대식 성당이 세워졌다. 바로 천주교 대구대교구 내당성당이다. 지금은 평화롭디 평화로운 한적한 동네지만 당시의 신문 기사만 살펴보더라도 이곳은 폭행, 강도 사건이 빈번한 곳이었음이 확인된다. 인근에는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는 병원이 있었고, 쓰러져가는 초가집들이 즐비했던 빈민가 중의 빈민가였다.
지금이야 동아시아에서 가톨릭 신자가 가장 많은 나라지만 성당이 세워지던 시기에는 가톨릭의 변방이었던 대한민국. 불모지에서 피어난 기적이라 말하기도 하는 내당성당은 서정길 요한 대주교와 한국으로 귀화한 오스트리아 출신 서기호(Rudolf Kranewitter) 신부에게서 비롯되는데, 오스트리아를 오가며 건축 기금을 모금하던 중 우연히 만난 오스트리아의 세계적인 건축가 오토카 울(Ottokar Uhl)이 그 설계를 맡게 된다.
서울 명동성당을 비롯해 대구 계산성당, 전주 전동성당까지 한국의 이름난 성당들은 대부분 순수한 고딕양식의 건축물이다. 성당 건축하면 대부분 뾰쪽한 첨탑을 예상하지만, 오토카 울이 설계를 맡은 내당성당은 그 성당 건축물들과 궤를 달리한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세 개의 십자가가 겹친 상태로 엎어져 있는 피라미드 형태다. 내부는 더욱 흥미로운데, 제대가 성당 중앙에 있어 제대를 중심으로 'ㅁ' 모양으로 둘러싼 형태로 미사가 이루어진다. 건축가 본인도 자신의 대표작이라고 일컬을 정도로,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형태였다.
하지만 1988년 내당성당은 내부 리모델링으로 평범한 일반적 형태의 성당으로 전락하는데 건물의 노쇠화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신도들을 감당하기 버거웠던 것이 그 이유다. 최근 내당성당은 제 모습을 되찾았다. 2022년부터 추진되었던 복원 사업이 마무리되어 58년 만에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이 담긴 옛 모습으로 돌아온 것이다. 역사가 남긴 흔적을 지키는 복원의 진정한 가치가 빛나는 순간이었다.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겠지만, 대구 토박이는 물론 가톨릭 신자들까지도 내당성당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이들이 많아 안타까웠다. 눈에 띄는 고층의 건물도 아니거니와 종교시설이기에 더 그런 듯하다. 하지만 건축사나 종교사적으로 이토록 의미 있고,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건축물이 대구에 존재한 적이 있었을까? 종교를 떠나 최근 복원된 성당의 성스러운 분위기와 고풍스러운 건축미를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시고 생생하게 느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길형식 거리활동가

박주희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