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사원 대환영" 50~70대 구직자 채용 후 다단계 투자 타깃

  • 노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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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2-26  |  수정 2025-02-26 07:41  |  발행일 2025-02-26 제7면
대구시민 울린 '기획부동산' 사기 <중> 취업 미끼의 덫

주부사원 대환영 50~70대 구직자 채용 후 다단계 투자 타깃
몇해 전 대구도심에서 발견한 '주부사원 모집' 전단(위)과 지하철에 붙어 있던 구인 광고. 기획부동산 사건 피해자들은 해당 광고가 기획부동산 업체와 관련이 있다고 추정했다. 독자 제공 〈게티이미지 뱅크〉

"몇년 내 투자금 몇 배로 불려"
취업 동시 땅 투기 끌어들여
가족·지인 등에 연쇄적 권유
취약층 조직적 접근, 피해 커


"기획부동산 일당의 첫 번째 고객이 바로 '직원'입니다." "그들은 직원도 고객이라고 했습니다."

대구 일대를 중심으로 벌어진 '기획부동산 사건'의 피해자들이 울분을 터트리며 한 말이다.

피해자들은 자신들이 직원이자, 기획부동산 사기의 가장 손쉬운 타깃이었다고 증언했다.

실제로 수년간 대구지역을 중심으로 자행된 기획부동산 관련 사건의 피해자들 상당수는 '취업'을 미끼로 한 기획부동산의 덫에 걸려든 것으로 파악됐다.

피해자들은 대구 곳곳에 사무실을 둔 기획부동산 업체가 고령층, 주부 등을 직원으로 모집해 가족·지인 등에게 땅을 판매하는 '다단계 방식'으로 운영됐다고 주장했다.

평범한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해 취업을 했다가, 그동안 고생해 모은 돈과 더 나아가 지인의 돈까지 잃는 비극적인 상황이 대구 곳곳에서 장기간 버젓이 이어진 것이다.

25일 영남일보가 단독 입수한 기획부동산 추정 업체의 광고판과 광고 전단을 살펴보면, 마치 일반 건설사나 부동산업체의 채용 광고처럼 보이는 것을 알 수 있다.

'XX건설' 'OO건설' 등 번듯해 보이는 이름을 내걸고 '공개채용' '사원모집'을 한다고 홍보한다. 급여는 월 200만원 안팎이고, 주 4일 근무라고 조건을 내건다. 업무는 단순한 '전화 업무'라고 한다. 구직을 희망하는 이들이라면 충분히 혹할 수 있는 조건이다. 특히, '주부사원 모집' '주부사원 대환영'이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특별한 경력이 없거나 경력 단절 등으로 이미 자신감이 많이 떨어진 50~70대 여성 구직자들에겐 무척 달콤한 문구이다.

광고판이나 전단에 적힌 번호로 전화해 어떤 일을 하는 회사인지 물어보면 "부동산 관련 일을 한다"며 친절히 설명한다. 그렇게 면접을 보러 간 이들 중 상당수가 취업과 동시에 기획부동산 업체의 먹잇감이 됐다.

기획부동산 범죄로 피해를 입은 A씨는 "2018년쯤 광고지를 보고 대구의 한 업체를 찾아갔는데, 그 곳에서 한 부동산에 투자를 하면 몇년 내에 투자금보다 몇 배로 불려주겠다고 현혹했다"며 "그렇게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수억 원을 빚까지 내가면서 투자했고, 지인에게도 투자를 권유했다. 나는 내가 부동산 관련 일을 하는 업체의 직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기획부동산 사기'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나 역시 그냥 직원이 아니라 그들의 고객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기획부동산 사건 피해자 B씨는 "월급과 수당을 미끼로 직원들이 땅을 사고 팔게 만든다. 직원과 그 직원의 주변인들을 대출까지 받아 땅을 사게 만들었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이에 대해 대구지역 한 변호사는 "이번 기획부동산 사건의 이면에는 매우 구조적으로 조직화된 일당이 말단 조직원(기획부동산 업체에 취업한 사람 등)들에게 먼저 땅을 판 이후 그 사람들을 통해 연쇄적으로 매매 권유를 함으로써 피해가 극심해지게 된 부분이 존재한다"라고 분석하며 "고정적인 수익이 필요했던 고령층 등 다소 취약한 계층을 타깃으로 삼았다는 점 역시 절대 간과해선 안된다"고 지적했다.

노진실기자 know@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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