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프타임] '비(非)수도권 라이프'의 환상

  • 노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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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3-21  |  수정 2025-03-21 07:33  |  발행일 2025-03-21 제26면
극심한 수도권 쏠림 시스템 속

비수도권 지역민의 일상생활

크고 작은 불편함 마주해야

서울병원 원정진료 고충 등

수도권 쏠림 원인 분석해봐야
[하프타임] 비(非)수도권 라이프의 환상
노진실 사회1팀장
직장 때문에 도시가 아닌 비교적 시골에 살고 있는 친구가 있다.

복잡하고 여유가 없는 대도시에서 오래 산 기자는 그 친구에게 "너의 환경이 부럽다"고 했다. 안정적인 직장이 있다면, 시골에서의 삶이 더 좋을 것 같았다.

대구보다 집값이 싸니 같은 값에 더 넓은 새집에 살 수 있고, 곳곳에 녹지공간이 많고, 사람이 적어 마트 쇼핑도 훨씬 쾌적하게 할 수 있고…. '건강한 슬로우 라이프'가 가능할 것 같았다. 매일매일 경쟁에 치인 사람 눈에는 그렇게 느껴졌다.

기자가 부럽다고 할 때면 친구는 묘한 표정으로 말한다. "너도 한번 살아봐…." 친구는 도시가 아닌 곳에서 사는 것은 장점만큼이나 단점도 크다고 토로했다.

우선, 차가 없으면 생활을 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지하철은커녕 대중교통이 무척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대중교통뿐만 아니라 일상의 편의를 위한 서비스는 대도시가 상대적으로 잘 갖춰져 있다고 했다. 대도시의 삶이 빈부격차와의 투쟁이라면, 시골의 삶은 그야말로 '생존 투쟁' 그 자체였다.

무엇보다 친구를 괴롭게 한 것은 병원 문제였다. 친구는 몇 해 전 아이에게 큰 병이 생겼을 때, 그곳에선 치료가 불가능해 대도시 병원으로 장기간 원정 진료를 다녀야 했다. 아픈 아이를 차에 태우고 몇 시간씩 운전을 해서 병원을 왔다갔다 했는데, 정말 미칠 노릇이었다고 한다. 병원엔 비수도권 지방에서 올라온 비슷한 신세의 환자들이 많았다. 병색이 완연한 얼굴로 수술이나 항암을 위해 먼 길을 온 사람들을 보면 서러움이 밀려왔다고 한다. 장거리 운전을 하는 자신도 힘들지만, 녹초가 돼 차에 실려 있는 아이를 보며 속으로 피눈물이 흘렀다. 어릴 적 드라마에서나 나오던 '서울 큰 병원'이란 표현이 그렇게 사무치는 말인 줄 몰랐다고 했다. 그 후로 친구의 마음 속에는 늘 '불안'이 따라다녔다. 대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살면, 언젠가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나와 내 가족이 죽을 수도 있겠다는 불안이었다. 설상가상 의정갈등과 의료공백 사태는 도시 사람들보다 시골 사람들에게 더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었다.

멀리서 보면 아름답게 보이는 것들이, 실재하는 이들에겐 아름답지만은 않은 현실이었다.

기자는 과거 '사는 곳이 계급인 나라'라는 제목으로 극심한 수도권 집중현상의 문제점에 대한 기획기사를 쓴 적이 있다. 그때 기사에 이렇게 썼다. "많은 국민이 서울이 아닌 지방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크고 작은 고충을 겪어야 한다. 그것은 '선택한 차이'가 아니라 처음부터 멍에처럼 짊어진 것이다. 이쯤에서 묻고 싶다. 지역 간 불공평한 구조와 그로 인해 선택하지 않은 차이는 과연 숙명인가." 그 기사 이후에도 여전히 사람들은 계속 서울로 몰려들고 있다.

그런 기사를 썼던 기자도 도시에서 오래 사는 동안 어느덧 '시골 라이프' 환상에 젖어 있었다. 서울에 주소를 두고 '비수도권 라이프'의 환상을 이야기하는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그동안 지역 간 삶의 격차를 줄이려는 정책적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구도 마찬가지. 하지만, 관련 정책은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구호에 그치거나, 정치적 파고에 쉽게 흔들리곤 했다.

돈 있고, 권력 있는 사람들이 기어코 수도권에 주소를 두고 살려는 이유가 뭘까. '비수도권 라이프'의 환상 그 이면의 현실을 바라봐야 한다.노진실 사회1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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