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박사 문제일의 뇌 이야기] 감칠맛 나는 칩을 만드는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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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3-31 08:21  |  발행일 2025-03-31
[향기박사 문제일의 뇌 이야기] 감칠맛 나는 칩을
만드는 기술

문제일 디지스트 뇌과학과 교수

매년 3월과 4월은 뇌과학자들에게 특히 중요한 시기입니다. 먼저, 3월 셋째 주에는 전 세계적으로 일반인을 대상으로 뇌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는 '세계 뇌 주간(Brain Awareness Week)' 행사가 열립니다. 1996년 미국 다나 재단(Dana Foundation)의 주관으로 시작된 이 행사는 뇌과학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높이기 위해 정부 기관, 대학, 병원, 연구소, 학회 등 뇌 연구 관련 기관뿐만 아니라, 초·중·고등학교, 기업 등 다양한 주체가 참여해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진행합니다.

4월에는 '과학의 날'을 맞아 다양한 과학 문화 행사가 개최됩니다. 우리나라 과학의 날은 1933년 경성공전 출신 과학자 김용관 선생님의 제안으로 시작됐습니다. 김용관 선생님은 조국의 근대화와 산업 발전을 위해서는 과학기술 발전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했고, 이를 대중에게 널리 알리고자 '과학의 날'을 제정했습니다. 이러한 김용관 선생님의 뜻을 이어받아 과학자들은 과학의 책임 있는 이용, 과학과 사회의 긴밀한 연결, 그리고 과학에 대한 대중의 인식 제고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특히, 향기 박사는 과학과 사회의 연결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MSG(글루탐산나트륨)라는 이름을 잘 알고 계실 겁니다. MSG는 감칠맛을 내는 조미료의 원료로 유명하지만, 우리 뇌에 존재하는 흥분성 신경전달물질인 글루탐산에 나트륨 이온이 결합된 물질이기도 합니다. 이 감칠맛을 세상에 처음 선보인 사람은 도쿄대학교 식품영양학과의 이케다 기쿠나에 교수님입니다. 이케다 교수님은 다시마로 우려낸 국물의 맛을 연구하던 중 다시마에서 새로운 맛 성분을 추출하는 데 성공했고, 그 성분이 바로 MSG라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이케다 교수님은 이 맛에 '우마미(감칠맛)'라는 이름을 붙였고, 세계 최초의 화학조미료인 '아지노모토'를 출시했습니다. 이후 회사는 아예 대표 상품명인 '아지노모토'로 회사 이름을 바꾸고 조미료 판매는 물론, 다른 아미노산 관련 사업에도 진출했습니다. 특히, 이 회사는 기술 개발에 대한 열정이 남달라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지금도 꾸준히 혁신하며 성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지노모토는 뜻밖에도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사실 '시대가 아지노모토를 필요로 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 반도체 제작 공정에서 반도체 기판에는 반드시 절연 소재가 필요한데, 몇 년 전 세계적인 반도체 공급 부족 사태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이 절연 소재, 특히 ABF(Ajinomoto Build-up Film)의 공급 부족이었습니다. 여기서 '아지노모토'는 바로 그 조미료 회사, 아지노모토와 관련이 있습니다. 1970년대 아지노모토 연구소에는 조미료 원료인 아미노산 생산 노하우를 활용해 절연성을 갖는 에폭시 수지를 개발하겠다는 다소 황당한 기초 연구팀이 있었고, 회사는 기꺼이 이 연구팀을 적극적으로 지원했습니다. 이 팀은 ABF를 개발해 고성능 CPU를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을 선보였고, 이 기술은 현재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을 좌우하는 ABF의 핵심 기술이 됐습니다.

오늘날 아지노모토는 전 세계 향미료 시장을 거의 독점하고 있으며,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절연 소재 시장도 장악하기 시작했습니다. 말 그대로 아지노모토 덕분에 '감칠맛 나는 컴퓨터 칩'이 세상을 가득 채우는 시대가 온 것입니다. 감칠맛의 원료인 MSG를 처음 추출한 이케다 교수님도 자신의 회사가 미래의 반도체 칩 생산에 기여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대구의 많은 영재들은 대학 연구실의 연구는 기초 연구라서 상용화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2025년 3월과 4월, 우리는 조미료의 아미노산에서 반도체 절연체를 찾아낸 상상력과 이를 상용화한 아지노모토의 혁신가 정신, 그리고 과학과 사회를 밀접하게 연결하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한 김용관 선생님을 되새기며, 사회가 필요로 하는 가치를 창조하는 과학자의 꿈을 키워보는 것은 어떨까요?

[디지스트 뇌과학과 교수 문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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