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칼럼]정재걸의 오래된 미래교육…죽음은 없다

  • 김종윤
  • |
  • 입력 2025-06-18 17:54  |  발행일 2025-06-18
정재걸 대구교대 명예교수

정재걸 대구교대 명예교수

정년퇴직 후에 모든 강의를 끊었다. 오직 한 가지 남겨둔 것이 대구 중노년문화연구소에서 주관하는 '웰다잉 전문지도자 과정' 강의다. 이 과정에서 내가 강의하는 주제는 '죽음과 깨달음'인데 강의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죽음은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매번 강의에서 느끼는 바이지만 죽음이 없다는 것을 이해시키기는 어렵다. 죽음이 없다는 것을 이해하려면 내 몸과 내 마음이 참나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해야 하는데 멀쩡히 존재하는 몸과 마음이 내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기란 정말 어렵기 때문이다.


불교에 삼계육도(三界六道)라는 말이 있다. 삼계는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를 말하고 육도는 욕계에서 겪는 6가지 고통을 말한다. 육도윤회(六道輪廻)라고 하지만 사실 육도는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겪는 심리적 고통을 말한다. 내가 누구를 미워하여 가슴이 찢어지는 상황이라면 지옥에 있는 것이고, 욕망에 사로잡혀 눈이 멀면 아귀의 세계에, 이기심으로 예의염치를 버리면 축생의 세계에, 누구와 격렬한 분쟁 속에 있으면 아수라 세계에, 그리고 분별심에 빠져 있으면 인간의 세계에, 모처럼 마음이 평화로우면 천상의 세계에 있는 것이다.


색계는 욕계를 벗어난 세계로 욕망에서는 벗어났으나 무엇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는 세계다. 내 밖에 저 컵이 존재하듯, 내 몸과 내 마음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심치 않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저 컵이나 내 몸과 내 마음 모두 의식의 구조물이다. 내 의식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욕계에서 벗어나기도 쉽지 않으나 색계에서 벗어나는 것은 훨씬 어렵다. 분명하게 존재하는 세계와 내 몸과 마음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깨닫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깨달음이란 모든 존재가 바로 이 자리, 곧 내 의식에서 일어나는 현상임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양자역학에 '양자 중첩'과 '양자 얽힘'이라는 개념이 있다. 슈레딩거의 고양이처럼 빛은 입자와 파동이 중첩된 상태로 존재한다. 우리가 관찰하는 순간 빛은 오직 입자로만 인식된다. '양자 얽힘'은 양자 중첩의 필연적인 결과로 두 개의 양자 입자가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한 입자가 다른 입자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말한다. 깨달음이란 불이(不二), 즉 모든 것이 중첩되어 있고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아차림이다. 삶과 죽음, 빛과 어둠, 천사와 악마, 선과 악 등 모든 대립은 중첩되어 존재한다. 존재(色)와 비존재(空) 역시 중첩되어 있으며, 인드라망이나 칼 융의 섬과 같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


칼 융은 우리의 마음을 섬으로 설명하였다. 망망대해에 떠 있는 수많은 섬처럼 우리는 자신과 세계를 분리 독립된 개체로 여긴다. 그러나 모든 섬은 물속에서 거대한 대륙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나의 몸, 나의 마음, 그리고 내 밖에 존재한다고 여기는 세계는 모두 의식이라는 대륙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불교의 공안(公案) 중에 '부모가 태어나기 전에 너의 본래 모습(眞面目)이 무엇이냐?'라는 것이 있다. 부모가 태어나기 전에 내가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나'의 존재와 마찬가지로 부모의 존재 역시 내 의식에서 일어나는 한 상념에 지나지 않는다. 의식으로서의 나는 공간적으로 무한할 뿐 아니라 무시무종(無始無終),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


죽음이 없음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모든 것이 의식에서 일어나는 것임을 생각으로는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생각으로 의식을 알 수 없음은 눈이 눈을 볼 수 없고, 귀가 귀를 들을 수 없는 것과 같다. 생각은 대상을 갖는데 의식은 대상이 아니기에 생각으로 의식을 찾는 것은 대상으로 의식을 찾는 것과 같이 불가능한 일이다. 모든 것이 의식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 생각이 일어나도 생각에 이끌려가지 않는다. 생각이 그저 일어났다가 사라질 뿐임을 알면 생각에 휩쓸려 어지러웠던 삶이 가벼워진다. 몸과 마음은 죽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의식은 죽지 않음을 저절로 알게 된다.


유체이탈이라는 현상이 있다. 임사체험을 하는 사람들이 죽은 뒤 자신이 공중에 떠서 병실 안에서 죽은 자신의 모습과 나의 죽음을 슬퍼하는 자식과 친지들, 그리고 의료진의 모습을 바라보는 현상이다. 이것이 평소에 의식이 바라보는 실제 모습이다. 하나의 풍경 속에 나무도 있고 꽃도 있고 나비도 있고 그 속에서 노니는 나도 있다. 그 모든 것이 통째로 하나로 존재한다. 내가 사라져도 풍경과 그 풍경이 일어나는 배경, 즉 의식은 사라지지 않는다. 의식의 눈은 성령의 눈, 하나님의 눈과 같다.



기자 이미지

김종윤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사회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