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 달 앞으로 다가온 경주 APEC의 준비가 총체적으로 위태위태하다. 만찬장을 비롯한 주요 시설의 공사 기간도 빠듯한 데다 정부의 국비 지원 미흡으로 지자체가 준비에 애를 먹고 있다. APEC 관련 총사업비 4천98억 원 중 지방비가 2천147억 원으로 전체의 52%를 차지한다. 이 가운데 경주시의 부담액만 대략 30%(1천207억 원)에 달한다. APEC이 국가 주도의 대형 국제행사이지만, 지방정부가 사업비의 절반 이상을 떠안는 불합리한 상황이다. 이는 지자체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규모이다.
주낙영 경주시장이 그저께 APEC 현장 점검을 한 우원식 국회의장에게 "국가행사의 품격에 걸맞은 인프라 확충과 운영을 위해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라고 호소한 것은 단순히 '국비 더 챙기기' 차원이 아니다. 정부의 현재 지원 수준으로는 응급의료, 도시경관 등 필수 분야에서 APEC에 걸맞은 인프라를 갖추기 어렵다는 절박함의 발로이다. 실제로 응급의료센터 확충과 VIP 병동 신설 등 핵심 사업은 지금까지 정부 지원이 전혀 없었으며, 지자체와 민간이 자체적으로 사업비 92억 원을 부담해야 하는 실정이다. 더욱이 2차 추경에도 필요한 사업비(232억 원)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 국비 102억 원만 요청한 상태다. 국제행사를 치르고 나면 지자체의 살림이 거덜 날 판이다.
우원식 국회의장과 국회 APEC 특위 위원들은 경주를 찾은 자리에서 공언한 국회 차원의 예산 지원 약속이 빈말이 되지 않도록 실질적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이재명 정부 역시 이번 APEC이 출범 이후 첫 국격(國格)을 건 대형 외교행사인 만큼 그에 상응하는 예산 지원에 팔을 걷어붙여야 한다.

논설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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