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로 새마을문고대구시지부 회장·수성고량주 대표
대구는 책을 통해 사람을 키우고, 시대를 깨워온 도시다.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학문 중심의 정신문화는 대구를 '도서관의 성지'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
올해 가장 반가운 소식 중 하나는 오는 10월, 남구 대명동·봉덕동 일대 옛 캠프워커 반환 부지에 들어서는 '대구도서관'의 개관이다. 연면적 1만4천757㎡(약 4천460평), 지하 1층~지상 4층 규모의 이 도서관은 어린이 자료실, 북카페, 전시실, 교육관, 열람실 등 다양한 공간을 갖춘 복합문화시설이다. 특히 보존 가치가 높은 고서와 고문서를 복구·디지털화하는 '공동보존서고'가 마련되고, 대구향교 낙육재의 귀중본도 이관돼 체계적으로 보존된다.
대구의 도서관 정신은 단순한 공간의 확충을 넘어, 오랜 교육열과 학문을 중시해온 전통에서 비롯된다. 대표 사례로 1904년 설립된 '우현서루'가 있다. 시인 이상화의 조부 이동진이 사재로 세운 이곳은 교육자 이일우가 운영하며 민족 교육기관의 역할을 했다. 상해임시정부의 박은식, 이동휘, 김지섭은 물론 IOC 위원 이상백, 김성수 등 인재들이 이곳을 거쳐 갔다. 우현서루는 '항일 사관학교'라 불릴 만큼 당대 지식인과 청년들에게 깊은 영향을 끼쳤으며, 1906년에는 계몽운동단체 '대구광학회'도 이곳을 거점으로 활동했다.
대구는 일찍이 지식과 기록의 가치를 인식하고, 이를 공동체의 자산으로 삼아왔다. 이 같은 전통은 지역 곳곳에 이어지고 있으며, 대표적인 예가 달성군 화원읍의 '인수문고'다. 남평문씨 가문이 1910년대부터 대대로 수집·보존해온 8천권의 고서와 수천 건의 고문서, 수백 점의 책판과 유물은 '살아 있는 한국학 연구소'라 할 만하다. 특히 단일 문중이 고문서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대중에 공개한 사례는 전국적으로도 드물다. 지식과 기록을 사유화하지 않고 함께 나누려는 이 정신은 지역문화의 귀중한 자산이다.
이러한 전통은 오늘날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계승되고 있다. 새마을문고대구시지부는 매년 4월25일, 민족시인 이상화와 소설가 현진건의 타계일을 기념해 '대구 책의 날'을 운영한다. 이상화 고택과 기념관을 중심으로 열리는 이 행사는 두 문인의 문학정신을 기리는 동시에 시민과 함께하는 뜻깊은 문화 축제로 자리 잡았다.
도서관주간에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글그림대회'도 열린다. 2천여 명의 어린이들이 환경 보호를 주제로 그림을 그리고, 학부모들은 '행복한 결혼,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주제로 편지글과 독후감을 작성한다. 작품은 국채보상운동기념도서관에 전시되며, 학부모 북토크와 교육특강으로 이어져 책과 삶을 잇는 복합문화 경험의 장이 된다. 여기에 독서골든벨 등 가족 단위의 독서·문화 행사가 더해지며, 이는 단순한 캠페인을 넘어 가정과 지역이 함께 성장하는 시민교육의 장으로 확장되고 있다.
또한 국내외 한국어 학습자와 다문화가정을 대상으로 '한국어 손편지글 대회'를 준비 중이며, 가족 간 사랑을 손글씨로 전하는 따뜻한 소통의 장을 마련하고 있다.
이처럼 책을 중심으로 세대와 공동체를 잇는 활동은, 한 권의 책이 지닌 힘과 마을의 지속 가능성을 다시금 일깨운다. 기억을 지키는 문고, 참여로 피어나는 시민의식, 함께 만들어가는 독서공동체야말로 지역이 미래를 열어가는 동력이다.
대구는 단지 책이 많은 도시가 아니다. 책을 통해 사람을 키우고, 공동체를 잇고, 더 나은 내일을 준비해온 도시다. 그래서 대구는 진정한 '도서관의 성지'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문화공동체, 새마을문고도 이 여정에 함께하며 도서관의 미래를 함께 써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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