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 2016] 청송 국가지질공원 Geo-tourism <1> 지지 않는 꽃, 청송 꽃돌 ‘구과상 유문암’

  • 박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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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4-19   |  발행일 2016-04-19 제13면   |  수정 2021-06-17 16:29
5000만년 ‘비밀의 정원’…꽃은 지기 싫어 돌에 숨어들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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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기 드론으로 촬영한 청송 진보면 괴정리 꽃돌체험장 전경.).


▨ 시리즈를 시작하며

 

청송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지질자원의 고장이다. 2014년에는 국내 넷째로 국가지질공원으로 인증받았다. 국가지질공원은 지구과학적인 가치와 경관이 뛰어난 지역을 환경부가 인증한 공원을 말한다. 

 

국내에는 청송을 비롯해 제주도(2012), 울릉도·독도(2012), 부산(2013), 강원 평화 지역(DMZ·2014), 무등산권(2014), 임진·한탄강(2015) 등 7개 지질공원이 운영 중이다. 

 

이 가운데 제주도는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받았다. 청송도 지난해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받기 위해 유네스코에 신청서를 제출했다. 오는 9월 제7차 세계지질공원네트워크(GGN)를 열고 최종 인증 여부를 가린다. 

 

청송의 지질명소는 총 24곳으로 청송읍, 부동·진보·안덕·부남·파천·현동·현서면 등 8개 읍·면에 산재해 있다. 이들 명소는 지역의 도시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원동력으로 청송의 미래를 이끌어갈 차별화된 콘텐츠다. 

 

특히 최근 들어 지오투어리즘(Geo-tourism)이 새로운 관광 패턴으로 자리 잡으면서 ‘미래 먹거리’로 주목받고 있다. 지오투어리즘은 천연의 지질 자원을 활용해 관광객을 유치하는 ‘지질 관광’을 일컫는다. 

 

영남일보는 청송군과 공동으로 지질명소 24곳을 찾아 떠나는 시리즈 ‘청송 국가지질공원 Geo-tourism: 지질명소로 떠나는 여행’을 연재한다. 청송을 무대로 펼쳐진 지질자원의 가치를 되짚어 보고 그 속에 담겨 있는 다양한 이야기를 생동감 있게 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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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돌 체험장에는 원석으로 꽃돌을 만드는 모습을 재연해 놓았다.

 

 

청송, 국내 넷째로 국가지질공원 지정
새로운 관광 콘텐츠로 지질관광 주목

40여년전 괴정리 산사태때 암맥 발견
유리처럼 반짝이는 결정 가진 화산암

동그란 꽃핵 정확히 찾아내 절단한 후
10여 차례 연마 통해 꽃돌로 재탄생

 


적도의 태양과 같은 해바라기, 우아한 낯빛의 모란과 서늘한 품위의 매화가 눈부시다. 달리아는 겹겹의 꽃잎을 풍성하게 부풀려 놓았고, 국화는 도도한 꽃잎들을 하나하나 정교하게 펼쳐 놓았다. 탐스러운 장미들은 다투어 반짝거리고, 앙증맞은 소국은 무리지어 산들거린다. 이 꽃들의 정원에 들어서면, 시간은 멈춘다. 멈춘 채로 영원하다. 계절이 오고 가도 이곳은 언제나 꽃 계절. 숲 짙고 골 깊은 청송에 ‘지지 않는 꽃들의 마을’이 있다. 옛 사람들은 그 골짜기를 ‘꽃내리’라 불렀다.


#1. 꽃을 품고 있던 골짜기

주왕산 줄기가 북쪽으로 달리다 대둔산(大遯山)으로 봉긋 솟는다. 맑은 날 산봉우리에서는 동해가 가까이 보인다. 그 산 중턱에 춘추시대 월나라 미인의 이름을 가진 서시천(西施川)이 흐른다. 이 골짜기에 처음 사람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한 것은 임진왜란 때라 전해진다. 난을 피해 깊고 깊은 골짜기로 들어온 사람들은 칡넝쿨 등을 걷어내고 서시천의 자태고운 물길에 기대어 마을을 이루었다. 바로 청송군 진보면 괴정리다. 회나무 정자가 있는 마을이란 뜻이다.

괴정리의 가장 큰 자연부락은 음지양지 마을이다. 32가구가 골짜기의 크고 작은 평지를 갈아 사과와 고추, 파프리카를 키우며 산다. 서시천 상류의 이슥한 갈평(葛坪)에는 단 두 집이 고집스레 마을을 지키고 있다. 계곡의 첫 마을이었던 둔골은 사람들이 모두 떠나 이제 미인의 속눈썹처럼 풍성한 물푸레나무만 무성하다. 갈평과 둔골 사이에는 그윽한 에메랄드빛의 갈평지가 동공처럼 열려 있다.

40여 년 전의 일이다. 큰 비가 괴정리를 휩쓸었던 그때, 가장 깊은 둔골의 산 사면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면서 천을 따라 꽃들이 화르르 쏟아졌다. 깨진 바윗돌 속에 꽃들이 피어 있었던 게다. 꽃은 꽃인데 돌이고, 돌은 돌인데 꽃이었다. 학자들은 먼 옛날 이 땅 곳곳이 요동치던 시대가 있었고, 그때 땅 속에서 솟은 뜨거운 마그마가 지표 부근에서 빠르게 굳어져 꽃이 되었다고 했다. 수 천만년 간 땅 속에서 가만히 숨죽이고 있던 꽃돌은 그렇게 세상에 드러났다. 언제부터 이 마을을 ‘꽃내리’라 불렀는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옛날 옛적 칡넝쿨 걷어내고 돌 캐어 집 지을 적에 사람들은 이미 꽃돌을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지금 괴정리는 꽃돌마을로 불리고 이 이름 속에 ‘꽃내리’는 긴 호흡으로 스미어 있다.

#2. 국제적으로도 희귀한 지질자원 ‘꽃돌’

학계에서는 청송 꽃돌을 ‘구과상 유문암’이라 한다. 유문암은 석영 등과 같이 유리처럼 반짝거리는 결정을 가진 화산암을 말한다. 구과상은 ‘한 점으로부터 섬유상 결정이 방사상 형태로 성장하여 구 형태의 알갱이가 만들어진 구조’를 뜻한다. 보통 방사형이나 타원형의 조직을 보여주는 암석을 구상암이라 하는데 일명 꽃돌 혹은 화문석이라 부른다. 이러한 꽃무늬 돌은 국내외 여러 곳에서 나타나지만, 구과상 유문암은 유독 청송의 산에서만 나고 특히 괴정리 일대 갈평지를 중심으로 집중 분포되어 있다. 게다가 다른 꽃돌에 비해 매우 다양한 구상조직을 갖고 있어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매우 희귀하다.

청송 꽃돌은 백악기 하양층군의 퇴적암류 속에 암맥으로 산출된다. 구과상 조직을 포함한 암맥의 절대 연령은 5천만 년. 꽃돌은 땅 속 유문암질의 마그마가 퇴적암을 뚫고 지표면으로 돌진하는 과정에서 냉각 속도의 차이에 따라 다양하게 피어났다. 수증기가 빠져나가거나 기포가 생긴 지표면 근처의 꽃은 더욱 다양하고 정교하다. 구과는 형태에 따라 국화 형, 민들레 형, 매화 형, 카네이션 형, 목단 형, 장미 형, 해바라기 형, 달리아 형 등 수십 가지다. 이들은 성인에 따라 방사상 구과와 층상 구과로 분류되고 크게 1단계 성장으로 끝난 단식구과, 다단계 성장으로 연결된 복식구과, 여러 개의 구심점을 가진 복합구과로 구분된다.

깊은 곳의 꽃돌은 청자색을 띠고, 지표면에 가까울수록 붉은색이나 노란색을 띤다. 가장 빠르게 냉각된 암맥에서는 방사상의 국화와 민들레, 해바라기, 달리아가 피고 가장 천천히 냉각된 암맥에서는 층상형의 장미와 목단 등이 피어난다. 장미가 화원을 이루고 국화가 무리지어 있는가하면 카네이션과 달리아가 나란히 피기도 하고, 국화 아래에 민들레와 목단이 함께 피어있기도 한다. 5천만 년 동안 땅이 숨겨온 비밀의 정원이다.


#3. 원석을 가공해 꽃 피우기까지…그리고 꽃돌 체험장

괴정리에서 발견된 꽃돌 암맥은 40개 이상이다. 갈평마을 당나무 계곡의 목단과 꽃알산(봉)의 홍국은 이곳에서만 유일하게 채굴된 꽃돌이라 한다. 현재 꽃돌 광산은 모두 폐광되어 더 이상 꽃돌 원석을 구하는 일은 어렵다. 다행히 옛 채석장은 지금 꽃돌 체험장으로 변신해 있다. 꽃을 찾아 땅을 파고 들어갔던 사람들의 모습이 재연되어 있고, 꽃을 품고 있는 암석과 돌이 꽃으로 피어나는 과정도 볼 수 있다. 돌 속에 살짝 드러난 꽃에서는 옅은 유황 냄새가 난다.

꽃돌의 원석은 평범한 돌덩이와 큰 차이가 없다. 돌 속에 꽃을 심은 건 자연의 솜씨지만 거기에 사람의 공이 더해져야 반짝이는 꽃으로 핀다. 꽃돌 장인은 원석의 겉모습만 보고도 꽃이 새겨져 있는지를 판별해 낸다. 동그란 꽃핵을 정확히 찾아 절단한 후 중심이 지나간 것은 들어내고 덜 나온 것은 찾고, 꽃을 몇 송이나 피울 것인지, 어느 정도 피게 할 것인지, 어느 면을 중심 꽃밭으로 둘 것인지를 결정한다. 그리고 최소 10여 차례의 연마와 연마를 거듭해 마침내 꽃잎을 피워낸다. 닦으면 닦을수록 더욱 신비로운 윤이 나는 꽃돌은 장인의 안목과 기술과 정성으로 새로운 영원을 시작한다.

같은 원석이라도 장인에 따라 꽃의 선명도가 다르다. 꽃돌은 꽃의 선명도와 색깔, 크기에 따라 상품가치가 매겨지는데 적게는 몇 만원부터 많게는 수천 만원대에 이른다. 꽃이 바탕색과 대조를 이뤄 도드라져 보이는 것, 꽃송이 하나하나가 온전히 제 색깔을 내는 것이 좋은 꽃돌이다. 괴정리 곳곳에는 꽃돌 전시장이 있다. 이 꽃들의 정원에는 활짝 피어 매혹적인 꽃도, 봉오리 져 고운 꽃도 그대로 영원하다. 우주를 유영하는 듯 대기도 중력도 잊는 이 영원의 꽃밭에 놀라운 향내가 퍼져 있다. 그것은 뜨거운 불의 냄새, 유황 냄새, 수천 만 년 전 지구의 속내다.

글=류혜숙<여행칼럼니스트·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초빙연구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드론 사진=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 참고문헌= △김효진, 2007, 청송 진보 괴정리 유문암맥의 구과 패턴과 성인, 안동대학교 대학원 △오창환 외, 2004, 청송 주왕산 북부 일대의 구과상 유문암에 대한 연구, 한국암석학회지 △황상구 2015, 청송국가지질공원 추가지질명소 개발 및 인증조건 보완, 청송군 △한국지명유래집 경상편, 2011, 국토지리정보원
 

 

 

■ 청송꽃돌과 일본꽃돌 간 관련성 

 

지상에 꽃피는 식물이 등장한 것은 백악기 말에서 신생대 들어서면서다. 현재 우리가 흔히 보는 식물들과 직접 연결되는 속씨식물의 쌍떡잎 류가 많이 나타났다. 그때 한반도는 중국, 일본과 한 몸이었다. 이 때문에 신생대 초반까지는 한국과 일본에서 발견된 식물 화석이 동일하다. 땅속에 꽃돌이 피어났던 5천만 년 전도 바로 그 시기다. 

 

이후 전반적으로 온난했던 신생대 초기를 지나는 동안 기온은 점차 차가워졌고 격심한 지각운동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약 2천300만년 전 신생대 제 3기 마이오세에 이르러 한반도 땅은 크게 요동쳤다. 일본이 대륙에서 떨어져 나갔고, 동해가 열렸다. 

 

청송 꽃돌은 세계에서 한국에서만 유일하게 대량생산되지만 일본의 나가사키와 후쿠오카 일대에서도 미량 발견된다. 동일한 식물 화석처럼 동일한 꽃돌이다. 그것은 땅이 흔들리고 바다가 열릴 때 훨훨 떨어져 나간 몇 송이 청송 꽃돌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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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군 부동면 하의리 주왕산 관광단지 내에 개관한 청송군 수석꽃돌박물관.


 

☞ 여행 정보

청송읍에서 31번 국도 안동방향으로 가다가, 진보에서 34번 국도를 따라 영덕 방향으로 간다. 신촌리 청송야송미술관을 지나 우회전해 들어가면 괴정꽃돌마을이다. 주차장에서 나무계단 산책로를 따라 올라가면 꽃돌체험장이 있고, 다양한 휴양 시설이 괴정리에 조성되어 있다. 특히 괴정리 일대에서는 수많은 꽃돌 전시장을 만날 수 있다. 부동면 하의리 주왕산 관광지 내에도 2014년 개관한 청송군 수석꽃돌박물관이 있다. 갈평지 서쪽 태행산에는 꽃돌 생태탐방로가 조성되고 있으며 현재 일부 구간(2.9㎞ 정도)은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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