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 2016] 청송 국가지질공원 Geo-tourism <4> 청송읍 부곡리 달기약수탕

  • 류혜숙 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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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5-10   |  발행일 2016-05-10 제13면   |  수정 2021-06-17 16:37
화강암 비집고 올라온 광천수…가뭄에 마르지 않고 추위에도 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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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기 드론으로 촬영한 부곡리 달기약수탕 일대 전경. 약수탕 주변 동서남북은 높은 산지를 이루고 있어 마치 수목이 울창한 심산유곡에 들어온 느낌을 자아낸다.

 

그곳은 달이 뜨는 곳이라 했다. 산으로 둘러싸인 골짜기, 동에서 서로 내려뻗은 긴긴 골의 한가운데, 또한 골 따라 흐르는 초수의 한가운데, 천중의 자리. 우물처럼 어두운, 밤마다 높이 에워 선 능선의 실루엣을 서늘히 밝히며 천구를 여는 달은 영묘한 신비로움이었을 터. 하여 오래전 이곳에 발 디딘 순정한 이들은 그 골의 이름을 ‘달기동’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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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 부곡리 달기약수탕 중 하나인 천탕의 모습. 달기약수는 무기질과 탄산이 가득한 천연 광천수로, 무기질 중 특히 철분 함량이 많아 붉은색을 띤다. 끊임없이 피어오르는 기포도 입안을 상쾌하게 한다(위). 철분을 함유한 약수가 지표면에 노출되어 공기와 접촉하면 산화해서 침전되고 이 때문에 약수터 주변은 붉게 물든다.
 

#1. 사람에게 약이 되는 물

 

시원은 알 수 없으나, 1914년 부(府)와 군(郡)이 통폐합되기 전까지 마을은 ‘달기동’이었다. 달이 뜰 때면 장막같이 보인다는 계곡 들머리의 ‘월막(月幕)’과 달의 바깥이라는 달기동 상류의 ‘월외(月外)’는 지금도 그 이름 고유하다. 그러나 골짜기를 협시하는 월외산은 태행산(太行山)으로, 월명산은 720봉으로 바뀌어 옛 이름 희미해졌고, 그 한가운데 달기라는 이름은 지워져 ‘부곡리’가 되었다.


조선 철종때 수리공사중 용천수 발견
비릿한 쇳물맛에 산초나무 물로 기록
탄산·무기질 가득…철분 함유량 높아
마시면 속병 나아 약수로 널리 알려져
닭 고아내면 한결 담백…백숙집 성업



골 따라 흐르는 천은 괘천(掛川)이라 한다. 태행산과 대둔산, 금은광이 등에서 시작된 물이 합쳐져 흘러 내려와 월막의 끝자락에서 용전천으로 유입된다. ‘조선지지자료’에는 괘천의 상류 유역을 따로 ‘약수천’이라 기록하는데, 그 연원은 16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 철종 때의 금부도사 권성하(權成夏)가 벼슬을 내려놓고 낙향해 터 잡은 곳이 바로 달기골이었다. 볕바른 들에 계수는 소용보다 궁했던지 그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농업용수를 확보하기 위한 수리 공사를 시작했다. 그러던 중 바위틈에서 솟아오르는 샘을 발견하는데, 그 물을 마시니 곧 트림이 나오고 이내 뱃속이 편안해졌다 한다. 이후 위장이 불편한 사람들이 즐겨 마시기 시작했고, 사람에게 약이 되는 물로 널리 이름났다 전한다.

‘여지도서’에는 괘천을 ‘초수(椒水)’라 기록하고 있다. 산초나무 물이라는 뜻이다. 왜 초수라 했는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물맛이 산초의 그 쌉싸름한 맛과 닮아 있어서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철종 대 훨씬 이전에도 이 유별난 물맛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의미일 게다. 싸늘하고 비릿한 금속성의 맛, 누군가는 쇳물 맛이라 하고 또 누군가는 핏물 맛이라 하고, 일반적으로는 단맛을 뺀 사이다 맛이라 하는 이 별난 맛을. 지금 마을의 이름은 달기동에서 부곡리로 바뀌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이 물을 찾아 마시고 그 이름을 ‘달기약수’라 부른다. 약수가 솟을 때 닭이 우는 소리 같다고 해서 달기약수라 부른다는 설도 있다. 지워졌으나 잊히지 않는 ‘기억의 유산’은 힘이 세다.

#2. 계곡 따라 줄줄이 샘

청송 부곡리 달기약수는 아무리 가물어도 끊어지지 않았다. 흘러나오는 양은 언제나 일정했고, 짱짱한 추위에도 어는 법이 없었다. 색도 냄새도 없는 것이 신기하게도 솟아 흐르는 자리마다 붉게 물들였다. 긴 시간이 흐르는 동안 자연스레 알게 된 달기약수의 신통방통한 면이다.

자연의 조화를 다 알 수는 없지만, 현대 과학은 달기약수의 실체를 좀 더 선명하게 밝혀준다. 약수탕 주변은 중생대 트라이아스기의 화강암 위에 쥐라기의 퇴적암이 덮여 있는데, 지하 심부의 이산화탄소가 화강암의 틈을 타고 올라와 퇴적암 내의 광물과 반응해 무기질과 탄산이 가득 든 천연 광천수를 만든 것이다. 무기질 중 특히 함유량이 높은 것은 철분. 그것이 주변을 붉게 물들이는 녀석이다.

그 사이 사람들은 더 많은 샘을 찾아냈다. 지금은 하탕에서 상탕까지, 계곡을 따라 줄줄이 10여 군데의 암반에서 약수가 솟아난다. 심지어 계곡물에서도 뽀글뽀글 탄산이 올라온다. 1915년에 발견된 하탕은 ‘약수탕 중에 가장 인기가 있고 약 효과도 좋고 물맛이 순수하여 항상 사람이 붐비는 곳’으로 ‘원탕’ 혹은 ‘본탕’이라 불린다. 최초의 샘물은 상탕으로 추정된다. ‘달기 약물이란 지금의 상탕을 의미하나…(중략)…하탕이 발견된 후 하탕만 찾게 됨으로 지금의 상탕은 언제나 한산하다’는 기록이 있다. 샘마다 물맛은 조금씩 다르다. 상탕의 물맛은 하탕에 비해 약하다. 그래서 오히려 상탕만 찾는 사람도 있다.

#3. 약수탕의 법칙

약수터 앞 가겟집에는 늘 물통이 산더미다. 몸이든 마음이든 급한 사람들을 위해 미리 약수를 채운 물통을 팔기도 한다. 물통 값에 물은 서비스란다. 물통 1말(20ℓ)을 받는 데 걸리는 시간은 30분 정도다. ‘약수는 마시는 사람이 우선!’이란 게 약수탕의 법칙. 그러니 빈 물통을 채워 가려는 사람들은 물 마시는 이들의 긴 줄 끝에서 느긋이 기다린다. ‘약수를 10ℓ 이상 담을 시에는 다른 탕을 이용해 주기를 바랍니다’라는 글귀도 있다. 이 부드러운 권고를 무시하는 사람은 없다. 성마른 사람들은 이미 푸른 새벽에 다녀갔을 터. 동네 사람들도 낮 동안에는 물을 받지 않는 게 불문율이다.

약수터 옆에 동그란 들돌이 놓여 있다. 기다림이 무료한 사람들은 들돌 들기에 도전하기도 한다. 가소롭게 여기다간 부끄럽기 쉽다. 자신 있게 도전한 젊은 아빠의 몸이 부들부들 벌겋게 달아오른다. 덩달아 나섰던 사람들의 얼굴에 낭패의 표정이 역력하다. 바윗돌은 흘깃 보기엔 대수롭잖은 크기지만 힘깨나 쓴다는 사내도 들기 힘들다고 한다. 여기에는 언젠가 한 병든 노인이 약수를 마시고는 번쩍 들어 올려 기력을 회복했다는 풍문도 스며있고, 한때는 돌을 들어 올리는 사람에게 먼저 약수를 주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바가지 속에 동그란 기포들이 그득하다. 꿀꺽, 한 모금 넘기고 움찔 한다. 역시 목 넘김이 쉽지 않다. 약수탕 옆에서 판매하는 약수엿에 절로 눈길이 간다. 단 엿은 약수를 조금 편하게 마시도록 돕는다. 소년은 꿀떡꿀떡 잘 마시는데, 볼이 실룩실룩 한다. 턱 하니 빈 바가지 내려놓는 폼이 당당하다. 마을 사람들은 예부터 물을 많이 먹기 위해 짭조름한 장떡을 쪄서 먹었다고 한다. 그것을 ‘장떡 먹고, 물 마시고, 속병 고친다’고 했다. 약수를 많이 쉽게 마시기 위한 여러 방법들이 있지만, 제일은 역시 ‘이쯤이야’ 하는 호기다.

#4. ‘약수백숙’의 원조

약수터 주변에는 닭 요리 집이 성업 중이다. 어느 음식이나 언제나 관건은 물이다. 마을에서는 달기약수로 음식을 한다. 밤늦은 시간이나 이른 새벽 달빛 속에서 받은 물로 밥을 짓고 닭을 고아낸다. 그러면 밥은 파르스름한 빛깔을 띠고 알알이 반드르르한 윤기가 난다. 닭은 한결 담백해져 맛의 온도가 달라지는 순간을 선사하는데, 약수에 들어 있는 철분 그득한 탄산수가 지방을 다스려 고기를 부드럽게 하고 특유의 거슬리는 냄새도 없애기 때문이다.

요즘은 옻나무를 넣은 옻닭백숙, 오골계요리 등도 별식으로 자리 잡았다. 닭 가슴살을 떡갈비처럼 석쇠에 구운 닭 불고기는 새로운 인기 메뉴다. 산송이가 채취되는 가을철이 되면 송이백숙으로 변신하고 청송의 산에서 나는 다양한 한약재를 넣고 토종닭을 고아내면 더할 나위 없는 약선 음식이 된다. 손님 체질에 따라 맞춤형 한방백숙도 가능하다. 어떤 한약재를 쓰느냐에 따라 빈혈과 산후조리, 위장병 등에 더 큰 효능을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약수닭백숙은 청송 달기약수 영천제(靈泉祭)가 그 시작이라 한다. 마을 사람들은 매년 음력 3월 말에 모두 모여 제사를 지내는데, 달기약수로 백숙(白熟)을 끓여 하늘과 땅에 감사를 전했다 한다. 물이 항상 솟아나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그리고 물이 항상 솟아나게 해 달라고. 그러한 풍습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글=류혜숙<여행칼럼니스트·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초빙연구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드론 사진=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 참고문헌=△서울대학교 규장각 △청송의 향기, 1982, 청송군 △청송군지 △황상구, 2015, 청송국가지질공원 추가지질명소 개발 및 인증조건 보완, 청송군
공동기획 : 청송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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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 달기약수탕 중 가장 인기가 좋은 원탕(하탕). 탄산이 많아 톡 쏘는 맛이 강하고 위장병, 신경통, 빈혈 등에 효험이 있다고 전해진다.
 

☞ 여행정보 

청송읍사무소에서 동쪽으로 3㎞만 가면 부곡리다. 

부곡1리 마을회관 지나 약수1교 건너 100m 앞에 원탕(하탕), 300m 거리에 신탕, 350m에 중탕, 400m에 천탕, 700m에 상탕이 이어져 있다. 

달기약수는 외씨버선길 1코스인 주왕산 달기약수길 18.5㎞에 속해 있으며 주변을 감싸고 있는 산에는 산악자전거 코스, 철인 코스, 산책 코스 등이 마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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