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세계 최강 군림...자동차 참담한 실패...삼성 경영 '빛과 그림자'

  • 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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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10-25 17:11  |  수정 2020-10-25 18:14  |  발행일 2020-10-26 제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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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별세한 25일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이건희 회장 별세 관련 속보를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대한민국 전자 산업을 글로벌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등 삼성의 혁신을 주도하고 국가경제 성장에 이바지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5일 별세했다.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셋째 아들인 이 회장은 1987년 삼성그룹 총수직을 물려받았다. 1993년 프랑크푸르트 선언 이후 삼성을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지닌 IT(정보통신) 전자 기업으로 도약 시켰다.

 


1942년 대구에서 태어난 이 회장은 어린시절부터 탐구정신이 강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이 회장이 평소 즐겨썼던 휘호가 '무한탐구'(無限探究)였을 정도로, 그는 특정 물건의 작동원리에 관심이 컸고 이는 반도체를 비롯한 전자산업 부흥의 단초가 됐다.
 

삼성의 극적인 변화는 1993년 6월7일 '프랑크푸르트 선언'에서 비롯됐다. 당시 이 회장은 삼성의 CEO와 임원들을 독일 프랑크푸르트 인근 캠핀스키 호텔에 불러모은 후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는 신(新)경영 선언을 발표했다. 이 회장은 "전자산업의 경우 불량률이 3%에 달하면 그 회사는 망한다. '불량은 암이다. 악의 근원이다'"라며 혁신을 재촉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삼성에서는 불량품 발생 즉시 생산라인을 멈추는 라인스톱 제도를 도입하는 등 이 회장의 신경영 선언은 삼성의 체질을 뿌리부터 바꾸는 계기가 됐다. 1995년 삼성전자 구미 사업장에서는 불량제품을 모두 태워버리는 극약처방도 이뤄졌다. 결국 '애니콜' 브랜드로 대변되는 삼성의 휴대폰 국내시장 점유율은 1995년 국내 1위로 올라섰고 이는 국내 모바일 산업이 세계무대로 진출하는 바탕이 됐다.
 

반도체 분야 초석을 깐 것도 이 회장의 업적이다. 삼성은 1992년 세계 최초 64메가 D램을 개발했으며, 이후부터 삼성은 메모리 반도체 시장 세계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이 회장 취임 당시 9조9천억원이던 삼성그룹 매출은 2013년 390조원으로 증가하는 등 폭발적 성장을 이뤄냈다. 또한 2106 글로벌 TV 시장에서 일본 소니를 제치고 1위를 달성했으며, 2012년에는 미국 애플을 누르고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세계 1위에 올라서는 기염을 토했다.
 

전자 산업에서 큰 성공을 거둔 이 회장도 자동차 분야에서는 참담한 실패를 맛봤다. 미국 유학 시절 이 회장이 자신의 차를 6차례나 바꿔가며 탔던 일화는 유명하다. 당시 이 회장은 자동차 분해와 조립을 반복하면서 자동차의 기본원리를 익히는 등 자동차 마니아로서의 모습을 보였다. 삼성자동차 창업 당시 이 회장은 "자동차 부품의 30%는 전자부품"이라며 자동차 산업에 대한 자신감을 보였지만, IMF 외환위기로 삼성의 자동차 사업은 종말을 고한다. IMF 이후 삼성자동차의 손실은 극심했고, 이 회장은 삼성자동차를 포기하기에 이른다. 2000년에는 대구에 자리한 삼성상용차도 파산했다.
 

기업인으로 성공했지만 이 회장의 인생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1999년 폐 부근 림프절에서 암세포가 발견돼 긴 투병생활을 했으며, 사내 비자금 폭로 사건 등으로 검찰수사를 받았다. 형제 간 상속 분쟁으로 갈등을 빚었으며, 무노조 경영 원칙을 고집해 노동계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임훈기자 hoony@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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