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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엄 할라미 지음/도토리숲 408쪽/1만5천원 |
온라인 그루밍 범죄의 심각성을 현실감 있게 다룬 청소년 소설이다. 2019년 'N번방 사건'으로 대한민국에서도 큰 이슈가 된 온라인 성범죄는 흔히 생각하는 결손 가정의 아이들만을 타깃으로 삼지 않는다. SNS를 즐겨 하고, 새 친구를 사귀는 데 거리낌이 없으며, 일상의 사소한 순간을 누군가와 공유하고 공감하기를 원하는 모든 아동과 청소년이 그 대상이다. 이 책에서 일어난 14개월간의 온라인 그루밍 사건은 실제로 우리 주위에서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다.
소설은 가장 친한 친구의 이민과 부모의 바쁜 일상으로 외톨이가 된 중3 소녀 홀리의 뼈아픈 성장 이야기다. 청소년 시기에 빠져들기 쉬운 온라인 세계의 이중성과 위험을 밀도 있게 보여 준다. 긴장을 늦출 수 없는 탄탄한 스토리 속에 묵직한 논제는 독자를 고민하게 한다.
특히 소설은 결핍과 상처를 지닌 주인공들이 그 세계 안에서 고군분투하며 성장하는 청소년 문학의 골격을 잘 갖추고 있다. 폭넓은 독자층을 사로잡을 수 있는 시의적절한 주제 역시 이 소설의 강점이다. 애정과 공감의 대상을 찾아 미친 듯이 몰두하는 주인공 홀리의 행동을 통해, 자칫 방향을 잃고 방황하기 쉬운 청소년 시기의 특징을 사실적으로 드러낸다. 지난해 영국도서관협회(CILIP) 카네기 메달 후보 도서이면서 영국 서던스쿨(SSBA) 후보 도서로 선정돼 주목을 받기도 했다.
소설 속 주인공 홀리는 또래 아이들과 잘 어울리고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외모에 관심이 많은 평범한 중3이다. 하지만 절친 에이미가 캐나다로 이민을 떠난 후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는다. 외할머니의 병마저 깊어져 엄마가 자주 집을 비우게 되면서 무척 외로움을 느낀다. 마음 둘 곳 없이 방황하던 어느 날, 홀리는 반 친구가 보낸 '친구 추천' 메시지를 무심코 누르고 만다. 그렇게 채팅으로 알게 된 이성 친구 제이는 홀리에게 전부가 되어 버린다. 시시한 이야기에도 공감해 주고, 서로의 상실을 공유하는 사이로 발전한다. 무엇보다 자신과 종일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제이에게 홀리는 푹 빠져든다. 홀리는 밤을 새우고도 모자라 휴대폰 사용 금지인 학교에서도 몰래 채팅을 시도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일상 사진을 주고받고, 사랑을 속삭이고, 만남을 약속하더니 급기야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제이와의 만남 이후로 홀리의 일상은 와르르 무너지지만, 제이에 대한 미련을 쉽게 버리지 못한다.
온라인 그루밍은 올바른 판단을 마비시키고, 일상에 균열을 일으킨다. 급기야 단숨에 인생을 무너뜨린다. 홀리 역시 '난 언제나 네 곁에 있어'라고 속삭이는 제이의 말에 서서히 잠식되고 만다. 악몽 속에서 깨어나 겨우 정신을 차릴 즈음, 자신이 얼마나 오랫동안 어긋난 길을 걸어왔는지 깨닫는다.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하던 순간, 홀리 곁을 묵묵히 지켜준 것은 부모와 친구 그리고 이웃들이다.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고 있지만 속 깊고 용감한 노아와 캐나다에 가서도 여전히 홀리를 베프로 생각하는 에이미, 끊임없이 잔소리하는 엄마·아빠, 내 자식 일처럼 홀리를 걱정하는 이웃들, 이들은 상처투성이 홀리를 따듯하게 품는다. 책의 말미, 홀리는 일기를 통해 14개월간의 시간을 회상한다. 그리고 고백한다. "나에게는 친구가 있고 가족은 나를 안전하게 지켜 줘. 나는 같은 실수를 다시는 저지르지 않을 거야." 우리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는 굳이 '언제나 네 곁에 있어'라고 말하지 않는다. 좋을 때도 나쁠 때도 늘 그 자리에 있을 뿐이다.
백승운기자 swbac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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