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규의 수류화개(水流花開)] 배롱나무(2) 山寺 고목으로 많아…껍질 수시로 벗는 것처럼 욕망·번뇌 벗고 수행 전념 의미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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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9-23   |  발행일 2022-09-23 제34면   |  수정 2022-09-23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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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 반야사 배롱나무. 보호수로 지정된 이 나무의 수령은 500년이 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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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지붕과 어우러진 경주 양동마을의 배롱나무.

추위에 약하고 햇빛이 잘 드는 곳을 좋아하는 배롱나무는 우리나라 남부지역에서 많이 볼 수 있었다. 옛날에는 서원과 종택, 정자, 사찰 등에 많이 심었다. 양정동 배롱나무처럼 옛사람들은 무덤 근처에도 배롱나무를 종종 심었다. 배롱나무가 자손의 부귀영화를 가져다준다고 믿었다고 한다. 대구 수성구 모명재 뒤에 있는 두사충의 묘에 가보면, 그 앞에 오래된 배롱나무 두 그루가 자라고 있다. 두사충은 중국 명나라 장수로, 임진왜란 때 원군으로 조선에 와 활동하다가 조선에 귀화한 인물이다. 전남 함평 백야산에 있는 함평이씨 선산의 묘소 제사를 위한 재실인 영사재(永思齋) 앞의 배롱나무 고목은 수령이 500년이 넘었다. 20여 년 전에 보호수(수령 500년)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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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 명옥헌의 가을 풍경. 배롱나무 사이로 정자 명옥헌 지붕이 조금 보이는데, 여름이면 이곳은 붉은 배롱나무꽃 천지로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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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색과 보라색 꽃을 피운 배롱나무.

◆담양 명옥헌 배롱나무

서원이나 종택의 사당 앞에도 배롱나무 고목이 많다. 대표적인 것으로 경북 안동의 병산서원 사당 존덕사(尊德祠) 앞 배롱나무를 꼽을 수 있다. 사당으로 오르는 계단 좌우와 전사청 마당 등에 자라는 배롱나무 고목 여러 그루가 여름이면 사당 주변을 붉은 꽃 천지로 만든다. 이곳 배롱나무는 2008년 안동시 보호수로 지정되었는데, 1613년 사당 존덕사를 건립하면서 류성룡 후손인 류진이 심었다고 한다.

최근(2019년) 보물로 지정된 대구의 달성 하목정의 배롱나무도 유명하다. 하목정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한 낙포 이종문(1566~1638)이 1604년쯤 건립한 정자형 별당 건물이다. 하목정 주위에 배롱나무들이 둘러싸고 있는데, 그중 하목정 뒤편 언덕 위에 자리한 사당 담장 안의 배롱나무가 가장 오래된 고목이다.

사당의 주인공은 전양군(全揚君) 이익필(1674~1751). 이익필의 위패와 초상이 봉안된 이 사당은 250여 년 전 창건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사당 담장 안에 배롱나무가 자라고 있다. 이익필은 1728년 이인좌의 난 때 공을 세워 공신에 올랐으며, 사후에 나라로부터 제사를 폐하지 말고 자손 대대로 모시라는 불천위(不遷位)의 영예를 받은 인물이다.

배롱나무는 선비들이 특히 좋아했는데, 배롱나무 풍광의 진수를 보여주는 대표적 명소가 담양 명옥헌이다. 배롱나무를 위주로 조성한 정원인 이곳을 그 꽃이 만발했을 때 찾으면 황홀한 풍광이 탄성을 절로 자아낸다. 별세계에 온 듯 착각에 빠지게 한다.

담양 소쇄원과 함께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민간정원인 명옥헌의 역사는 조선 선비 오희도(1583~1623)에서 시작된다. 벼슬에 큰 관심이 없던 그는 만년에 마을 뒷산에 '세속을 잊고 사는 집'이라는 뜻의 망재(忘齋)를 지어 살았다. 오희도가 세상을 떠나고 아들 오이정(1574~1615)이 아버지를 기리기 위해 정자 명옥헌을 짓고 앞뒤에 연못도 조성했다. 그리고 배롱나무도 심었다. 명옥헌 배롱나무의 시작이다.

명옥헌 원림에는 수령 100년 이상 된 배롱나무 30여 그루가 있다. 배롱나무는 정자 명옥헌 주변의 소나무, 느티나무, 동백나무와도 잘 어우러지고, 연꽃이 핀 연못과 조화를 이뤄 더욱더 멋진 풍광을 선사한다. 정자 앞에 그 안에 작은 섬이 하나 있는 연못이 있고, 그 주위에 배롱나무가 늘어서 있다. 정자 주위에도 배롱나무가 둘러서 있다. 명옥헌에 '삼고(三顧)'라는 편액이 걸려 있는데, 인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 오희도를 중용하기 위해 세 차례 찾아온 일화가 서려 있다.


보물 지정 달성 하목정 둘러싼 고목
선비들이 즐긴 담양 명옥헌 붉은꽃
주변 나무와 잘 어우러져 멋진 풍광

영동 반야사 수령 500년, 사찰 중 最古
조선 무학대사가 꽂은 지팡이가 자라
관음보살이 배롱나무 위 현신하기도

꽃말 '떠난 임 그리움'·부귀영화 상징
당나라 현종, 양귀비보다 사랑한 나무



◆산사 배롱나무

배롱나무는 사찰에서도 많이 심었다. 출가 수행자들이 껍질을 수시로 벗는 배롱나무처럼 세속적 욕망과 번뇌를 벗어버리고 수행에 전념하라는 의미에서 경계의 방편으로 삼으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오래된 산사 대부분에는 배롱나무 고목들이 자라고 있다. 밀양 표충사, 순천 송광사, 승주 선암사, 고창 선운사, 김제 금산사, 김천 직지사, 양산 통도사, 구례 화엄사, 하동 쌍계사, 장성 백양사, 서산 개심사, 계룡산 신원사 등의 사찰을 한여름에 찾으면 붉은 꽃을 피운 수백 년 된 배롱나무를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산사 배롱나무 중 가장 오래된 나무는 영동 반야사의 배롱나무 두 그루다. 500년이 넘었다. 여름날 반야사 마당에 들어서면 멀리 보이는 배롱나무가 바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극락전 앞에 두 그루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서 있다. 극락전은 대웅전이 새로 건립되기 전에는 중심 법당이었다. 작은 법당인데, 붉은 꽃이 흐드러지게 핀 배롱나무가 완전히 가리고 있다. 배롱나무 앞에는 작은 삼층석탑(보물)이 서 있다. 이 배롱나무는 단연 이 사찰의 주인공이다.

이 두 그루 배롱나무는 산사 배롱나무로는 보기 드물게 보호수(영동군수 지정)로 지정돼 있다. 1994년에 지정된 것인데, 안내판에는 당시 수령은 500년이고, 나무 높이는 8m와 7m, 가슴높이 지름은 1.5m와 1.2m 등으로 기록돼 있다. 한쪽 나무의 밑둥치는 성인 두 사람이 팔로 안아야 할 정도다.

방문 당시 한 스님이 지나가기에 잠시 배롱나무에 관해 물어봤다. 스님은 친절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조선 시대 무학대사가 가지고 다니던 배롱나무 지팡이를 이곳에 꽂아두었는데, 이것이 나중에 둘로 나뉘어서 자라게 되었다고 한다. 반야사 스님이 들려준, 그야말로 전설 같은 이야기다.

이 배롱나무는 오래전부터 사진작가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었는데, 여름이 되면 해마다 수많은 전화가 걸려와 전화를 받는 일이 성가실 때가 많았다고 한다. 꽃이 만발했는지, 언제 절정이 되는지, 언제 가면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는지 등을 물었는데, 요즘은 인터넷이 발달해 예전만큼은 전화가 걸려오지 않는다고 했다. 70여 년 전에는 관음전에 관음보살이 현신했는데, 당시 한참 동안 배롱나무 위에 머물다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할머니 신자들이 들려줬다는 말도 했다.

◆배롱나무 이야기

배롱나무는 백일 동안 붉은 꽃을 피워 백일홍(百日紅)이라고도 불리지만, 정식 명칭은 아니다. 식물 백일홍과 구별해 '목백일홍(木百日紅)'으로도 부른다. 중국에서는 간지럼 타는 나무라는 뜻으로 파양수라 하고, 일본에서는 나무를 잘 타는 원숭이조차도 미끄러지는 나무라는 뜻으로 사루스베리(猿滑)라고 부른다.

나무줄기는 매끈하고 껍질이 자주 벗겨진다. 꽃은 7~9월에 피고, 부귀영화를 상징한다. 꽃말은 '떠나간 임에 대한 그리움'. 꽃은 대개 붉은색이지만, 보라색 꽃과 흰색 꽃을 피우는 나무도 있다.

중국의 당나라 현종은 배롱나무를 양귀비보다 더 사랑했다고 한다. 현종은 자신의 집무실 중서성(中書省)을 자미성(紫微省)이라 불렀는데, 이 자미성에 배롱나무를 많이 심었기 때문에 배롱나무꽃을 '자미화(紫微花)'라고 했다고 한다.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자 절명시(絶命詩) 4편을 남기고 음독·순국한 매천 황현은 '아침이고 저녁이고/ 천 번을 보고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라고 읊으며 이 꽃을 특히 사랑했다.

숙부에게 내쫓긴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능지처참 형을 받은 사육신 중 한 명으로 절개의 표상인 성삼문도 배롱나무를 매우 좋아했다. 그는 자신의 일편단심과 충절을 100일 동안 변함없이 붉은 꽃을 피우는 배롱나무꽃에 담아 이런 시 '백일홍'을 남겼다.

'어제저녁 꽃 한 송이 지고(昨夕一花哀)/ 오늘 아침 꽃 한 송이 피어(今朝一花開)/ 서로 일백일을 바라보는(相看一百日)/ 너와 마주하여 즐거이 한 잔 하리라(對爾好衡杯).'

성삼문을 비롯한 사육신의 위패를 모시고 기리는 논산 충곡서원도 여름이면 곳곳의 배롱나무들이 붉은 꽃을 피워 그들의 일편단심을 대변한다.

배롱나무에는 가슴 아픈 사랑의 전설도 서려 있다.

옛날 어느 어촌에 머리가 셋 달린 이무기가 살고 있었다. 이무기는 해마다 마을에 내려와 처녀를 한 사람씩 제물로 받아 잡아갔다. 어느 해는 제물로 바쳐질 처녀를 연모하는 한 청년이 처녀를 대신하겠다고 나섰다. 청년은 처녀의 옷을 입고 제단에 앉아 이무기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이무기가 나타나자 준비한 칼로 이무기의 목을 베었으나 하나의 목은 자르지 못했다. 이무기는 그대로 도망쳐 버렸다. 처녀는 청년의 용감함과 사랑에 반해 목숨을 구해준 은혜에 보답고자 평생 반려자로 모시겠다고 했다.

그러나 청년은 이무기의 나머지 목을 마저 베어야 한다며 배를 타고 이무기를 찾아 나섰다. 떠나면서 "이무기 목을 베어 성공하면 하얀 깃발을 내걸 것이고, 실패하면 붉은 깃발을 걸겠소"라고 말했다. 처녀는 청년이 떠난 후 매일 빌면서 청년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100일이 되는 날 멀리서 청년의 배가 돌아오는 모습이 보이는데, 불행히도 붉은 깃발을 걸고 있었다. 처녀는 청년이 이무기에게 당해 죽었다고 생각하고 자결하고 말았다. 그런데 그 깃발은 이무기가 죽으면서 내뿜은 피로 붉게 물든 것이었다. 사정을 알게 된 청년은 자신의 잘못을 통탄하며 처녀의 시신을 양지바른 곳에 묻어 주었는데, 이듬해 그 무덤에서 곱고 매끈한 나무 한 그루가 자라나 백일 동안 붉게 꽃을 피웠다.

글·사진=김봉규 전문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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