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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4차 산업혁명과 국민의 고학력 열망에 따라 고등교육 및 직업교육체계를 대대적으로 개편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대학교육을 확대하고 재교육을 활성화하는 등 고급인력 양성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함부르크대학 도서관 전경. |
영남일보는 창간 77주년을 맞아 코로나 팬데믹으로 중단됐던 '대학혁신의 길' 시리즈를 다시 시작한다. '대학혁신의 길'은 4차 산업혁명으로 촉발된 대학혁신의 국제적 흐름을 소개하기 위해 2018년 10월부터 취재·보도해 왔다. 2019년 12월까지 일본·독일·이스라엘·미국 등의 대학과 연구소,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 등의 정책 등을 소개했다. 이번 '대학혁신의 길 Ⅴ' 편은 '독일의 직업훈련과 평생교육 시스템'을 취재해 보도한다.
2008년 10월22일 독일 드레스덴에서는 독일 연방정부와 주정부 교육부 장관이 모여 '교육을 통한 성장-독일 자격 이니셔티브' 협정에 서명하고 이를 발표했다. 이 협정은 독일 전후 유지해온 교육시스템의 일대 전환을 가져왔다. 세계화, 인구 통계학적 변화(인구감소 및 이민자 증가) 및 그 어느 때보다 빠른 지식 증가의 도전에 직면해 교육체제를 개편하기로 한 것이다.
이 협정의 핵심내용은 '교육은 독일에서 최우선 순위가 되어야 한다'고 선언하고 2015년까지 독일의 교육 및 연구 지출 비율을 국내 총생산(GDP)의 10%로 늘리기로 합의한 것이다. 협정문 가운데 대학 관련 내용만 살펴보면 △독일 내 대학 확대 및 추가 교육을 위한 투자를 계속 늘린다 △2010년까지 마스터 장인, 기술자, 비즈니스 관리자, 이에 상응하는 자격증 소지자의 대학 입학이 가능하도록 문호를 넓힌다 △동일 연령대의 대학진학률을 40%로 높인다 △응용과학대학과 이중 학습 과정을 확장한다 등이다.
정리하면 대학진학률을 40%까지로 높이고 이를 위해 응용과학대학 등 대학설립을 늘리도록 한다는 것이다. 또 인문계 고교를 졸업하지 않더라도 직업훈련교육 등을 통해서 대학진학 자격을 준다는 것이다. 이는 독일이 그동안 단순 숙련공 위주의 직업훈련 및 인력육성 정책에서 창의적인 전문기술인력을 양성하는 교육 및 직업훈련의 질적 전환을 선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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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獨 자격 이니셔티브' 협정
직업훈련 체계 고급·고도화 불가피
중졸 수준서 고교 진학 점프도 허용
2014년 기점 대학진학률 50% 넘어
응용과학대는 학제 다양화 등 새 변신
공교육만으론 국민 수요 감당 못해
◆2022년 교육보고서
2008년 교육협정 후 독일 고등교육체계에는 얼마나 변화가 있을까.
우선 대학진학률은 이미 2014년에 동일연령대 가운데 50%로 획기적으로 높아졌다. 같이 태어난 사람 가운데 절반이 대학에 진학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1950년대는 5%에 불과했고 2000년대 초중반까지 35% 안팎에 불과했으나 2014년을 기점으로 50%를 넘으면서 독일에서 고등교육이 보편교육화하고 산업계가 요구하는 고급인력을 배출하는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대학도 꾸준하게 설립되고 있다. 1994·1995년 독일의 고등교육기관(Hochschule)은 325개였으나 2000·2001년에는 352개, 2020·2021년에는 421개로 늘어났다.(https://www.datenportal.bmbf.de/portal/en/chart-2.5.1.html) 독일이 꾸준히 고급인력 양성을 위해 적극적으로 대학을 설립하고 있는 것이다. 눈에 띄는 점은 이 기간 응용과학대학(Fachhochschule·University of applied science)만 급격히 늘어났다는 점이다. 응용과학대학은 1994·1995년 136개교에서 2000·2001년 155개교, 2008·2009년 188개교, 2020·2021년 209개교로 늘어났다. 26년 만에 무려 73개교가 설립된 것이다. 일반대학(University)은 1994·1995년 89개교에서 2020·2021년는 108개교로 19개교만 더 생겼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이들 신설된 응용과학대학의 절반 정도가 사립대라는 점이다. 공교육체계가 튼튼한 독일에서 사립 응용과학대학을 허용해야 할 정도로 고등교육수요가 폭발하고 있는 것이다.
◆직업교육의 대전환
독일경제가 성장하고 국민의 삶의 질이 높아지면서 고등교육에 대한 수요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었다. 의사, 변호사, 교수, 기업가 등 안정적인 전문직이 늘어나고 중산층이 확대되면서 독일 사회는 자연스럽게 자녀교육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게 된다. 자녀를 대학에 진학시키고자 하는 부모가 늘어나고, 특히 전문직 부모는 자녀를 의대나 법대 등에 진학시키고 싶어 했다. 이런 욕구가 사회전반적으로 확산하면서 직업교육체계의 변화요구로 이어졌다.
나아가 독일경제의 발전과 4차 산업혁명으로 기업이 요구하는 기술수준, 직업교육 수준이 예전에 비해 높아지면서 직업교육 과정을 좀 더 고급화해야 할 필요성이 증가하고 있는 현실이다. 직업훈련으로 배출된 인력이 기술요구 수준이 높아진 기업체 수요에 맞추기 위해서는 재교육 수요도 늘어나는 등 직업훈련 체계의 고급화·고도화가 불가피해진 것이다.
이런 사회적 흐름이 이어지면서 독일 정부와 주 정부는 직업훈련 체제에 변화가 불가피함을 인식하고 체제 개편에 착수했다.
일차적으로는 다양화이다. 중졸 수준 직업교육, 고졸 수준 직업교육 등으로 단순하고 엄격한 시스템이었던 직업교육체계를 다변화했다. 종졸 수준 직업교육을 받고 있더라도 고교진학이 가능하도록 했고, 고졸 수준 직업교육을 받으면서 기회가 생기면 대학진학도 가능하도록 했다.
◆응용과학대학의 변신
또 하나는 고급인력양성 체제를 구축한 점이다. 대졸 수준의 전문인력 육성시스템을 강화했다. 이런 독일직업교육체계 변화를 이끌고 있는 것은 응용과학대학이다. 앞서 살펴봤듯이 응용과학대학은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고급인력을 요구하는 산업계의 요구와 자녀를 고학력·전문직으로 키우려는 부모의 기대욕구가 맞물려 응용과학대학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독일 고등교육기관(Hochschule)을 크게 일반대학(Universitat), 응용과학대학(Fachhochschule)으로 분류하면 일반대학은 주로 종합대학으로 연구중심대학이다. 역사와 전통이 깊으며 3+5년 학·석사 연계과정 졸업생이 많다. 전문인력을 배출하는 만큼 취업률이 높다. 응용과학대학은 말 그대로 이공계 실무교육 중심이다. 9개 이공계 명문대로 불리는 TU-9도 응용과학대학이다. 응용과학대학은 4년 졸업 후 취업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으며, 일부 학생들이 석사과정에 진학한다. 응용과학대학 취업률 또한 높다.
최근 5~6년 사이 응용과학대학은 새로운 변신을 시작했다. 고등직업교육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서 교육과정 다양화에 나선 것이다. 응용과학대학은 기본적으로 4년 졸업과정이지만 학생들의 희망에 따라 2년 과정, 3년 과정, 4년 과정, 대학원 과정 등 학제를 다양화하고 있다.
이는 학생들의 선택권을 존중하고 맞춤형 교육을 확대하기 위한 것이다. 학생이 우선 2년 과정의 아우스빌둥(이중교육)에 입학했으나 학업에 흥미를 느껴 공부를 더하고 싶을 경우 2학년 2학기에 진로 재설정이 가능하도록 했다. 학생 희망에 따라 2년 과정을 마치고 취업을 할 수도 있고, 1~2년 더 공부해 취업을 원하면 그렇게 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이는 독일에서 전문·고급 인력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고급인력 배출을 늘리는 한편 고학력·전문직을 선호하는 학생의 욕구도 충족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이 이행되면서 기존 직업교육에 의해 배출된 전문직들이 디지털화 교육 등으로 추가적인 교육수요가 늘어나는 것도 응용과학기술대학 설립을 촉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로 인해 연방정부나 주정부에서 응용대학설립 수요에 대응하는 데 한계를 보이면서 사립 응용과학대학이 늘어나는 것도 독일에서 나타나는 고등교육의 새로운 현상이다.
글·사진=박종문기자 kpjm@yeongnam.com

박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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