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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동 변호사 |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직후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한 말들은 비탄과 충격에 빠진 국민을 더욱 분노케 하였다. 그는 사법시험에 소년 등과한 후 판사로 오랜 경력을 쌓았는데, 대통령의 고교와 대학 후배로서 평소 막역하였다고 한다.
경황이 없던 상황에서 그가 한 말들은 사회질서를 유지해야 할 총책임자로서가 아니라 법을 다뤄온 경험에서 책임 추궁을 면하려는 방어기제가 작동한 '법정의 언어'로 들린다. '예년과 비교했을 때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인 것은 아니었다'는 말은 경찰력을 동원하지 않은 잘못을 부정하는 의미로, '경찰·소방 인력이 미리 배치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다'는 말은 현장에 경찰력이 없었다는 사실은 많은 인명손실이라는 결과와 인과관계가 없다는 또 하나의 도피로를 마련하기 위한 것으로 들린다.
또한 '정확한 사고 원인이 나오기 전까지는 추측, 선동성 주장을 해서는 안 된다'는 말에서는 헌법에 규정된 무죄추정 원칙을 떠올리게 된다. 나에게 돌을 던지려면 너희들이 증거를 대라는 식이다. 어떤 나쁜 일이 일어났을 때 국민이 높은 관직에 있는 사람에게 묻는 것은 법적인 책임이라기보다 도의적·정치적 책임인 경우가 많다. 수많은 죽음이라는 엄청난 고통 앞에서 이에 공감하기는커녕 법적인 책임을 면하려는 법정의 언어로 답하는 것은 자신이 행사하는 큰 권력과 이에 따르는 넓은 책임을 망각한 너무나 실망스러운 처신이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윤 대통령을 선택했던 주위 사람들은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자기 쪽 사람들만 중용함으로써 편 가르기 정치를 했다고 생각하고 정치 경험이 없는 윤 대통령은 인연에 얽매이지 않고 유능한 사람들을 골고루 쓸 것이라고 하였다. 본인도 검사 생활이 경력의 전부여서 세상 물정에 취약한 점을 인정하고, 대통령이 모든 현안에 대해 다 알 필요는 없으며 똑똑하고 유능한 인재를 등용하여 일을 맡기면 되는 것이라고 누누이 주장하였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인사를 보면 이러한 바람은 허사인 것 같다. 측근인 검사 출신들을 중용하여 별 관계없는 자리까지 채웠는데, 특히 행정안전부 장관이라는 중요한 자리에 업무와 관련된 경력이 없는 판사 출신을 기용한 것은 뜻밖이었다. 어떤 야당 정치인은 한동훈에게는 검찰을 맡기고 이상민에게는 경찰을 맡겨 두 복심(腹心)이 수사기관을 장악하도록 하였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그 기대에 부응하듯 내부 반발을 무릅쓰고 행안부 안에 경찰국을 신설하여 경찰의 독립성을 침해하였다.
검사나 판사는 현실을 날것으로가 아닌 기록으로 접한다. 하나의 사건에는 당사자 개개인의 땀과 눈물이 뒤섞여 있지만 법관에게는 쳐내야 할 두꺼운 기록일 따름이다. 사건의 속살을 파악하기보다 기존의 법리를 적용하기 좋게 사안을 잘 다듬어 내어 법정의 언어로 말하는 것이 그 역할이다. 법정의 언어는 사람의 고통에 공감하지 않는다. 의심하고, 따져보고, 살펴보는 말들이다. 대통령이나 이 장관이나 모두 법조인으로 살아와서인지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대통령이 현실에서 직접 시민들과 접촉할 때의 말과 태도에서 드러나는 그 '어색한 동떨어짐'은 여기에 기인한 것이 아닐까.
높은 자리에 혹하는 것은 사람의 속성이지만 이 장관은 자신이 잘할 수 없는 장관직 제의를 사양했어야 했다. 이런 지혜는 드문 것이지만, 지금이라도 자신의 불찰을 깨닫고 그만두는 것이 좋겠다. 늦었지만 더 늦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이재동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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