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발생 5일째. 대구시민들도 마치 참사 현장에 있었던 것처럼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그동안 무심코 흘려보냈던 '압박'에 대한 기억을 떠오른 것이다.
그간 대구경북에서도 압사 사고는 종종 발생했다. 2005년 상주시민운동장에서 열린 콘서트 현장에서 11명이 숨지고 100여명이 부상 당한 참사가 대표적이다. 1996년 대구 우방타워 일원에서는 열린 라디오 공개방송에서 서로 먼저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다 2명이 숨진 사고도 있었다.
대구에 사는 김모(여·28)씨는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프로야구 경기를 직관하는 것이 취미다. 이런 김씨는 최근 이태원 참사에 자신이 경기장에서 보고 겪은 풍경이 오버랩 되곤 한다고 했다. 지난달 8일 열린 삼성라이온즈의 올해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는 '관중석 100% 매진'으로, 2만4천명이 야구장을 찾았다.
김씨는 당시 기억을 떠올리면서 "사람이 너무 많아 계단도 벽인 줄 알았다. 그런 상태에서 내려가는데 내 의지가 아니라 인파에 밀려 내려가는 느낌이었다"며 "평소 광장공포증, 폐소공포증이 있는 탓에 그 정도로 사람이 많으면 숨도 가빠지고 정신이 없어지곤 한다. 그래서 그냥 친구 손을 붙들고 나왔다"고 했다. 이어 "그나마 '한 방향' 이동이어서 다행이었지만, 이태원 참사 현장은 그 상황도 아니었을 것"이라며 "아주 어릴 때 서울 명동에 처음 가서 사람들 사이에서 공포에 질렸던 기억이 떠오르기도 한다. 잊고 살았던 기억들이 요즘 유독 불현듯 떠오른다"고 덧붙였다.
참사를 휴대폰을 통해 실시간으로 본 탓에 지금까지도 무력감을 느끼고 있다는 직장인 강모(32·대구 수성구)씨는 당분간 사람이 모이는 장소에는 가지 못할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어젯밤 복잡하고 갑갑한 도심을 홀로 걷는 꿈을 꿨다. 한동안은 사람들이 모이는 밀폐된 공간에 가기는 꺼려질 것 같다"며 "나 역시나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에 몇 번 가본 경험이 있다. 누구나 노출될 수 있는 위험이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대학생 신모(24)씨는 "23층 아파트에 살고 있는데, 아침 시간마다 출근하는 직장인, 등교하는 학생들로 엘리베이터가 가득 찬다"며 "이전까지는 그저 공기가 답답하고 1층으로 내려가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려 힘들다는 생각이었다면, 이제는 솔직히 긴장이 된다"고 했다.
교직원 박모(여·29)씨는 "순간 학교에서 매년 여는 축제도 아찔하게 느껴졌다"며 "출퇴근 지하철이 서울만큼 복잡하지는 않아도 답답하다. 직장동료도 출근 시 대중교통 안에서 여러 사람과 부딪히기 싫다는 이유로 일찍 출근하고 있다"고 전했다. 경북대 출신 김모(여·28)씨는 "몇 년 전만 하더라도 경북대를 지나가는 937번 시내버스는 등교 시간 내내 '콩나물 시루'였다"며 "없는 공간도 서로 만들어서 타는 탓에 승객이 무려 버스 앞문 계단까지 차기도 했다. 이 일이 일어나고 보니 자칫하면 큰 일이 일어났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태원 참사의 강도는 그 이상이었겠다는 생각에 몸서리쳐 진다"고 했다.
시민들의 이 같은 증상 대해 김정범 계명대 의과대학 정신건강의학교실 교수는 "실제 끔찍한 사고를 겪지 않고, 목격했다거나 간접적으로 사고에 대해 들은 뒤 그 여파를 느끼는 것도 '트라우마'라고 본다"며 "매스컴 등을 통해 자극적인 장면을 본 사람들이 많았다. 같은 자극을 받았더라도 특히 예민한 사람들은 더 불안하게 느낄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도심 한 가운데서 일어난 참사였고, 누구나 겪을 수 있었던 일이었기에 대중이 느끼는 공포가 더 커졌다고 본다"며 "지금 과정이 일종의 '애도하는 과정'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불안과 공포가 다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어서, 돌아가신 분들에 대해 충분히 마음 아파하고 공감하다 보면 괜찮아질 수 있다. 그러나 예민한 시민들은 뉴스 보기를 줄이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서민지기자 mjs858@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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