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학의 시와 함께] 이경록-方魚津·2

  • 송재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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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1-07  |  수정 2022-11-07 06:55  |  발행일 2022-11-07 제25면

파도 소리, 한밤 내 내 귓가에 쌓이고 쌓이고, 마침내 온 바다가 귓속으로 몰려든다. 귓속으로 몰려드는 바다. 나는 바다의 말라붙은 바닥을 걸어간다. 걸어가라 걸어가라 저 멀리 보이는 그대 잠의 海溝, 그곳에 돋아 있는 무수한 꿈의 바닷말들. 오 일렁이는 바닷말들. 나는 말을 뜯어 대궁이채 씹는다. 질겅질겅 씹히는 말 대궁이, 몰려드는 바다. 이젠 돌아가지 말자, 돌아가지 말자고 온 바다가 소리친다. 한밤 내 비린내 풍기는 그대 숨소리, 내 귓가에 쌓이고, 쌓이고, 쌓이다가 마침내 내 잠의 堤坊을 무너뜨린다. 이젠 돌아가지 말자. 이경록-方魚津·2


시인은 한밤중의 바닷가에 있다. 아마도 파도가 들리는 바닷가에서 혼자 잠을 청하는 중이리라. 하지만 잠은 쉽게 오지 않는다. 오락가락 풋잠과 불면 사이에서, 파도 소리를 통해 바다를 보다가 바다에 들어가다가 바닷속으로 들어가서 바닥을 걸어간다. 바닥에는 해초인 바닷말들과 만나는데, 바다는 돌아가지 말라고 소리친다. 그것이 꿈이 분명한데 바다는 어느덧 그대 숨소리이고 나는 그대 곁에서 그대의 숨소리를 듣고 있다. 그대는 바다이기도 하고 그리움이기도 하다. 그대가 바다 그 자체일 때, 시인은 바다에 온통 젖어 있다. 바다라는 물질, 바다라는 생각, 바다라는 과거와 현재가 시인을 감싸고 있다. 그때 바다는 시적 대상이다. 해초의 말과 언어의 말이 겹쳐진 것을 통해서 우리는 이 비유가 실제와 환상이 겹쳐진 것을 알 수 있다. 즉 바닷속으로 감정 이입되어 바다가 나이고 내가 바다인 몽환의 상태가 된다. 바다에서 바닷말을 씹으면서 권하는 "돌아가지 말자"라고 했을 때의 바다는 바다를 벗어나지 않으려는 바다, 바다 위의 바다, 몇 겹의 바다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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